안복옥 장로 은퇴 간증문
2005년 7월 3일
목 차
1. 할머니 따라서 8세에 교회에 간 얘기
2. 할머니를 왜 놈들이 잡아 간 것과 옥에서 나온 얘기
3. 8. 15 해방되어 제가 예수님 피 흘린 손잡은 얘기 - 예수님 만난 얘기
4. 할머니 귀신 섬긴 것과 할머니 눈 아픈 얘기 - 할머니 예수 믿기 전 얘기
5. 저의 결혼과 신혼 초 이사 세 번 간 것과 수수 풀떼기 먹은 얘기
6. 흉년에 살림 초 고생한 얘기
7. 신랑이 교회 못 가게 해서 교회 몰래 간 얘기
8. 집과 땅 산 얘기
9. 남편이 교회 간다고 핍박한 얘기
10. 육이오 피난 얘기
11. 맥추감사절 지킨 얘기
12. 추수 감사한 얘기
13. 남편이 술 끊게 된 얘기
14. 십일조 드린 얘기
15. 새벽 기도한 얘기
16. 류마치스 관절염으로 기도한 얘기
17. 주일 학교 어린이 교회 인도한 얘기
18. 위암으로 기도한 얘기
19. 큰 아들 잃은 얘기
20. 새벽기도 하다가 환상 본 얘기
21. 투병 생활 중에 하나님의 은혜 깨달은 얘기
22. 목사님 섬긴 얘기
23. 막내 아들 이종수 선교사가 된 얘기
24. 맺는 말
간 증 문
안복옥장로은퇴(2005년 7월 3일)
1. 내가 예수 믿게 된 것은요 - 할머니 따라서 8세에 교회에 간 것
나는 할머니를 따라서 여덟 살 때에 교회에 나가기 시작 했어요.
교회에 갔더니 큰 다마 사탕 하나를 선생님이 주시더라구요. 그 다음부터 교회를 꼭 갔어요. 예배시간에 선생님이 하나님이 제일이라고 하시며 독생자까지 아끼지 아니하시고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말에 나는 깜짝 놀랐어요. “교회에 가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요?” 하고 선생님께 묻기도 했답니다.
2. 할머니를 왜 놈들이 잡아 간 것과 옥에서 나온 얘기
그러던 중 할머니가 교회 다니셨다고 일본 놈들이 잡아다가 신사 참배하라고 옥에 가두었어요. 할머니는 결국 옥중생활을 하셨답니다. 믿는 사람은 다른데 절하지 않는다고 해서 말이에요. 신사참배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모래면 할머니께서 사형선고를 받게 되는데 오늘 8.15 해방이 되었어요. 그래서 사형을 받지 않고 살아 옥에서 살아 나셨는데, 고문이 너무 심해서 걷지를 못하셔서 작은 아버지가 업고 서울 형무소에서 걸어 오셨어요.
3. 8. 15 해방되어 제가 예수님 피 흘린 손잡은 얘기 - 예수님 만난 얘기
할머니를 전도하신 아주머니가 심방을 오셨어요. 아주머니가 저 더러 기도를 하라고 하셔서 기도를 하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피 묻은 손이 열 네 살 밖에 안 된 저에게 나타나는 것이에요.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그 손을 잡고 눈물 콧물을 흘리며 얼마동안 기도를 했는지 몰라요. 그런데 그 아주머니가 “얘 복옥아! 할머니 안 죽었으니 그만 울어”하는데도 계속 기도를 하였습니다.
우리 할머니는 자녀들이 예수 잘 믿고 또 주의 종들이 나오기를 소원하셨습니다.
살아생전에는 주의 종이 나오는 것을 못 보시고, 옥고 후유증으로 칠 개월 만에 하나님께 부름을 받으셨어요. 그 후손들이 예수 믿고 목사, 장로, 권사, 집사, 평신도까지 있답니다.
기도는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기도 하시다가 하나님이 내 소원 안 들어 주신다고 낙심하지 말고 생명 다하는 날까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4. 할머니 귀신 섬긴 것과 할머니 눈 아픈 얘기 - 할머니 예수 믿기 전 얘기
저희 가정은 예수 믿기 전에는 예수 믿는 사람이 앞으로 지나가기만 해도 재수가 없다고 했어요. 가을에 고사를 지낼 때에 떡시루 열두개를 찌고 쪼자리 넷 달린 시루에다 떡 한 시루를 쪄서 할아버지가 지고 본향 산이라는 높은 산에 올라가서 터죽까리를 만든 것에 또 다시 덧입히고 떡을 놓고 절하던 집인데, 예수 믿게 되었으니 하나님이 택하신 집인가 생각합니다.
예수 믿기 전에 할머니가 하루는 눈이 아프시데요. 그런데 점점 더하시는 것이에요. 굿을 해도 안 낫고 점점 더하시는 거예요. 이 때가 왜정 때입니다. 하루는 교회 다니는 아주머니가 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아주머니 지금까지 할 거, 다해봤으니 마지막으로 예수나 믿어보세요” 하시는데 전에는 천작장이가 길만 지나가도 재수 없다고 하시던 분이 그때부터 예수를 믿게 되었어요. 할머니는 예수를 돌아가실 때 까지 집사님으로 하나님을 잘 섬기다고 돌아가셨어요. 그리고 그 후손인 저 까지 그리고 저의 후손 천대까지 예수 믿을 꺼예요.
5. 저의 결혼과 신혼 초 이사 세 번 간 것과 수수 풀떼기 먹은 얘기
저는 열일곱 살까지 얼굴도 한번 못 본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됐어요.
열일곱 살 10월 28일 날 결혼을 하는데, 조군(가마)을 타고 군자역에 와서, 기차를 타고, 일리 역전까지 와서 또 조군을 탔는데 조군을 멘 아저씨가 술 취하여 조군을 막 흔들고 가서 멀미를 하였어요. 아저씨가 어떤 오막살이집으로 들어가서 마루에다 조군을 내려놓는 거예요. 조군에서 일어나니까 놋숟가락 한웅쿰을 주며 양푼을 밟고 그 앞에 놓고, 그 숟가락을 앙푼에다 던지고 들어가라는 거예요. 그때에 저는 하나님이 지혜를 주셨어요. “안돼”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그 양푼을 넘어 갔어요. 그랬더니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거에요. 색시가 고집이 세다며 놋숟가락을 양푼에 안 던지면 안된다나요. 그래서 그 놋숟가락을 마루 바닥에다 던지고 들어갔어요. 그런데 멀미가 나서 한님(내가 부리는 종)더러 나 멀미나서 누워야겠다 했더니 누우라는 거예요. 할 수 없이 누워있었어요. 그리고 그 밤에는 신랑 얼굴도 못 보고 자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 한마디로 밥맛이 없더라구요. 그래서 속으로 “하나님 저런 사람을 저의 남편으로 주셨나요” 하고 기도를 드렸더니 제 마음속에 전도 대상자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첫 날 밤을 지내고 부엌에 들어가 보니까 참깨 짚이 옴솟(작은 솥) 부뚜막에 세워져있어요. 그런데 형님들이 새색시가 오늘은 부엌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고 들어가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방으로 들어와서 참깨 짚이 왜 부뚜막에 서 있느냐고 물었더니 큰 형님이 도둑을 맞아서 예방하는 거래요. 그때 저는 이 가정이 예수 믿어야 살겠다고 속으로 말하니 뭐라고 중얼거리는지 아무도 모르지요. 그런데 아침에 자세히 보니 신랑이라고 진짜 마음에 안들더라구요. 키는 짜리몽둥이고 얼굴은 시퍼런 점이 얼굴 한쪽을 가리고 명주옷을 입었는데 바지는 사람 두 명은 들어갈 것 같고, 팔소매는 손가락 까지 내려오고, 참 밥 맛 없더라구요. 결혼 다음날 그 옷을 다 뜯어서 다시 바느질을 해서 저녁때에 몸에 맞는 옷을 해 입히니 좀 났게 보이더라구요. 결혼 다음날 바느질을 하고 있으니 사람들이 수군거리더라구요. “색시가 보통이 아닌가봐” 하는 거예요. 그리고 신랑에게 옷을 입으니 저녁때에 사람들이 솜씨가 좋은가봐 하더라구요. “두고 보자. 나는 무엇이든지 할꺼예요 하며 저들 구원시켜 주세요” 기도를 드렸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이 나에게 맡겨주신 내 남편, 내가 사랑할 사람이다하며, “하나님 감사합니다” 속으로 기도했어요. 그날부터 밥을 해 먹으려고 하는데 쌀이 없는 거예요. 큰 형님이 뒤지 밑을 박박 극는 거예요. 그리고 삼일도백이(삼일 길)를 가야하는데, 가는 그날이 시아버님 회갑이래요. 쌀도 없는데 돌아가신 분의 회갑을 한대요. 동네 사람들 술대접을 한대요. 그래서 삼일도백이를 못 갔습니다.
일주일 되던 날 친정집에 갔다가 와서 주일날이 닥쳤습니다. 그런데 샘골 시고모님 뵈러 간대요. 옳지! 잘 됐다 하고 따라 갔습니다. 생전 처음 가는 길인데 신랑이라고 앞에서 혼자 막 가다가 보이지 않으면 섰다가 보이면 또 저만큼 가고 그렇게 해서 고모님 댁에 가니까 교회 가신다고 나오시더라구요. 그래서 인사만 하고 교회를 따가 갔답니다. 그리고 돌아와서 신랑이 우리 집으로 이사를 간대요. 따라가 보니 방 한 칸, 부엌 한 칸, 두 칸 집이 있더군요. 이것이 우리 집이라는 거예요. 그 집을 청소하고 불을 때고 그리고 바람이 불면 문에서 휘파람 소리가 나는 집입니다. 그래도 그 집에서 삼일 밤을 자고 신랑은 쌀 4말을 팔아 가지고, 고물을 사러 나갔어요. 해가 지려 하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아기를 하나는 걸리고, 하나는 업고 들어오시며 이 집이 우리 집이라는 거예요. 흉년이 들어 살수가 없어서 남편은 서울로 돈 벌러 가고, 자기는 친정으로 갔는데 못 살겠다고 돌아 왔데요. 그러니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 어떻게 해요” 하고 기도를 드렸어요. 그런데 그분이 나를 종인 줄 알고 애기 기저귀까지 빨라는 거예요. 한 칸 방에서 다섯 식구가 사는 것도 어려운데 할 수 없이 신랑이 들어온 것을 보고 “나는 더 이상 못살겠다고요 나는 도망가고 싶어요”하고 말했어요. 그러니까 왜냐는 것이에요. 나는 저분의 종이 아니라구요 하고 하나님 어떻게 해요하고 또 기도를 드렸어요.
그 집은 그 집 아저씨가 장례 쌀 가져갔는데 갚을 것이 없다고 그 집을 가지라고 한 것이었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합니까? 신랑이 말하기를 할 수 없이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간대요. 또 따라가 보니 쥐가 쥐구멍을 살림한 방이었답니다. 쥐구멍을 흙으로 막고 이사를 갔는데, 가서 불을 때니 불이 안 들어가는 거예요. 그래서 안집 아주머니가 우리 부엌에서 밥을 해먹으라는 거예요. 그래서 할 수 없이 삼일을 살았어요. 그러다가 할 수 없이 또 이사를 가로 하고 방을 얻었어요. 그런데 방문이 얼마나 작은지 조금만 신경 안 쓰면 꽝하고 머리를 부딪혀 주저 않기도 하였답니다. 그 집은 바로 김만수 장로님이 출가 해오시기 전의 집이었답니다. 그 집은 아주머니, 아저씨, 아들 세 식구가 살고 계신 집이었답니다. 그 중에 작은 방 한 칸을 얻어 살았습니다. 아주머니는 여러 가지 장사를 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청소며 모든 가정의 일을 도와 드리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저는 교회에 다니고 아주머니는 무당을 좋아하셨어요. 그러나 어떻게 합니까? 안집은 가운데 솥에다가 밥을 지으시고 저희는 옹솥에다가 밥을 했답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아주머니는 무당을 좋아하시지, 신랑이라는 사람은 교회를 가면 잘못되는 줄 알고 교회 못 가게 하지. 교회 가는 사람은 없지. 어떻게 할 수 없더라구요. 저는 기도를 드렸어요. 하나님 나 예배드리고 싶어요. 어떻게요 하니. 지혜가 생기더라구요. 옳지 고모님, 큰 댁, 샘골에 사시니까 고모님 네 간다고 핑계되고, 고모님이 오라고 하신다고 해서 샘골에 가서 예배드리고 큰댁에 가면 일할 것이 있더라구요. 예배드리려고 거짓말 하는 것은 괜찮다 생각했어요. 그러나 집이라고 돌아오면 밥해 먹을 솥이 있나요. 쌀이 있나요. 그래도 집이라고 옵니다. 하루는 밖에 나가보니 옆집 할머니가 돼지죽을 무쇄 벙거지 솥이라는데다 끓이시더군요. 그래서 할머니 그 솥 저 주시면 안돼요? 했더니 아유! 어린 것이 하시며 돼지죽을 돼지에게 쏟아 주고 그 솥과 옆이 뚫어진 가마솥을 주시더라구요. 그 솥을 닦아서 너무 추워서 집 가리 밑에서 흙을 파다가 솥을 걸었답니다. 그러나 그 솥에 넣어 끓일 양식이 있어야지요. 있는 것이라고는 총 쌀 다섯 말인데 한 말을 남기고 네 말을 팔아서 고물 장사 밑천을 삼았어요. 쌀 한말 가지고 아무리 줄여 먹어도 한 달이 지나니까 없더라구요. 그래서 저녁밥을 솥만 걸어 놓고 있으니까 안집 아주머니가 밥 안해 하시며 보리쌀 한 되를 주시며 봄에 보리밭 매줘 하시는 것예요. 저는 고맙습니다 하고 밥을 지어 먹었습니다. 그러나 보리쌀 한 되로 몇 끼니나 먹겠습니까? 다음에 또 겉수수 한 되를 주시는 것예요. 그러나 겉수수를 어떻게 해서 먹는지 알아야 해먹지요. 아주머니 말씀이 맷돌에다가 갈래요. 그래 시키시는 대로 했어요. 때로는 도망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으나 저의 어머니 아버지 말씀이 죽어도 시집 울타리 밑에서 죽어야지 집으로 오면 너는 죽어 하시던 말씀이 생각나서 못 가고 그 수수를 갈아서 물 끓이는데 그 가루를 풀어서 풀떼기를 끓여서 먹으며 하나님 감사합니다. 기도를 드린 적도 있답니다. 한 번은 교회 갔다가 큰댁에 들어가서 먹을 것이 없어요 하였더니 쌀 하고 보리 쌀 하고 주신적도 있답니다. 가난은 나라도 못 당한다는데 그렇게 살면서 고물이 무엇이냐고요. 돼지 털과 놋그릇이랍니다. 그것을 신랑이 지고 가서 시동생이 유기 공장에서 일을 하니까 거기서 팔아 가지고 물 길어다 먹을 물 통, 나무로 만든 것 하나와 겉수수 한 말을 사가지고 왔더군요. 저는 그것을 받아 놓고 울었어요. 너무 감사해서 생전 처음으로 사오는 것으로 사오는 것을 받았으니 말이예요. 그것을 갈아서 물에 축여서 그것을 쪄서 남편 도시락을 싸주고 집에서 먹는 것은 수수 풀떼기를 끓여서 소금을 조금 넣어서 먹는 것예요. 한 번은 솥 주신 할머니가 오셔서 보시고 가시더니 며느리 몰래 퍼왔다고 하시며 곤쟁이 김치 한 사발을 갖자 주시는 것예요. 그것을 한 입을 먹으니 그것이 왜 그렇게 맛있는지요. 그렇게 맛있는 것을 신랑 한 번 더 주려고 못 먹었답니다. 그리고 재미있는 얘기도 할께요. 안집 아주머니는 여러 가지 장사를 하시니까 편육을 팔으시고 하나를 남겨서 아들 주신다고 마루의 단지 속에다 넣어두시는 것예요. 그것이 왜 그렇게 먹고 싶었는지요. 몰래 칼로 잘라 먹었답니다. 그리고 나니 마음이 괴로워서 할 수 없이 그 이틑날 아주머니께 제가 잘못했어요. 제가 편육을 잘라 먹었어요. 아주머니 왈 알았어. 얼마나 먹고 싶으면 그랬겠냐 하시며 그것을 썰어 양념 장하고 주셨다답니다. 저는 또 한 번 감사를 드렸답니다.
6. 흉년에 살림 초 고생한 얘기
죽을 끓여도 들고 갈 상이 없어요. 큰 형님께 상이 없어서 불편하다고 그랬더니 개다리 상이라는데 그것도 다리가 부러져 나무를 대고 못 박은 것 하나를 주시더군요. 그리고 둘 째 형님이 함석으로 만든 들통과 형님이 아끼시던 것 여러 가지 살림살이를 주셔서 그것을 쓰면서 살다가 내가 물건을 사면, 그 물건을 갔다 드린다고 하면서 교회 갔답니다.
저는 주인 아주머니가 시어머니 같았어요.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난답니다. 수수 풀떼기와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신 분이기에. 그러나 전도 못해서 구원시키지 못해서 마음이 아프답니다. 왜 그런 것을 먹고 살았느냐고 물으신다면 전국이 흉년 들어서 양식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신랑이 들어왔을 때 수수 풀떼기를 차려 주었더니 그것도 맛있게 드시더라구요. 저는 또 한번 감사를 드렸답니다. 신랑이 고물을 사러 가다가 어느 집에서 잠도 자자고 하시면 먹을 것이 없어서 못 재워준다고 그런데요. 그래서 수수 간 것을 물에 축축하게 축였다가 쪄서 그것으로 도시락을 싸주면 그날 밤은 잠을 재워준대요. 한 번은 저의 시동생이 인천 유기 공장에서 일을 하시다가 쉬는 날이라고 형님 집이라고 오셨는데 아무 것도 없으니 어떻게 해요. 그래서 할 수 없이 수수 풀떼기를 갔다 놓고 세 식구가 앉아서 먹는데 시동생이 두 번 떠서 입에 넣으시더니 나는 못 먹겠어. 나는 샘골로 갈거야 하고 그러시고 나가시더라구요. 몇 해 전까지 그런 말을 하시며 아주머니는 죽으면 안돼 하시며 수수 풀떼기 먹은 이야기를 하시더니...
그런 때에도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셨어요. 왜냐구요? 제가 기도하고 생각하고 일하면 하나님이 이루어 주시니까요. 제가 믿기 때문이지요. 그러던 중 어느 듯 봄이 되었어요. 새싹이 나오고 일을 시작합니다. 하루는 주인 아주머니가 보리 밭을 매러 가자고 하셔서 보리 쌀 한되 갖다 먹은 것도 있고 수수 한 되 갖다 먹은 것도 있고 하니 따라 나갔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호미 자락입니다. 익숙지 못하지만 하나님 어떻게 해요 하고 나이 18세 어린 나이 이지만 농사 일을 따라 나섰답니다. 보리가 어떤건가도 모르니까 보리밭을 어떻게 매는지 몰라서 서서 저분들이 어떻게 하나 보니 어떤 사람이 왜 섰나 묻기에 저는 배우려고 해요. 하고 한 참 일을 보니 나도 할 것 같더라구요. 저도 따라 밭을 매서 다른 사람보다 앞서 가니 그 자리에서 우리 일 해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몇 명 있어서 미리 먹은 것도 다 갚고 다 갚았답니다. 겉 수수와 보리쌀 말입니다. 그렇게 살면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기도나 나오더군요. 그 다음에 또 주인 아주머니가 내일은 못 자리를 매러 가자 하시더라구요. 다음 날 아주머니를 따라 못 자리 매러 간다고 호미를 들고 나섰습니다. 아주머니가 호미는 무엇하냐 하시는 거예요. 나물 캐러 가니 하시는 것예요. 아니요 못 자리 매러 간다고 하셨잖아요. 아주머니는 깔깔 웃으시면서 호미는 두고 그냥 따라 와 하시는 거예요. 그냥 따라 갔더니 논으로 가시는 거예요. 그러더니 논에서 치마를 걷어 묶고 나 하는대로 하라 하시는 거예요. 따라 했어요. 아주머니는 논으로 들어 가시며 무엇을 뽑으시며 피가 많다고 하시는 거예요. 저는 피요 하고 다리를 보니 따끔하면서 거머리가 달린 것을 본 거예요. 아요 난 몰라 하고 소리 쳤어요. 아주머니가 손에 가졌던 풀을 주시며 이것으로 싹 긁어버리라고 하시는데 그대로 하였더니 다리에서 피가 나더군요. 아유 피하고 소리 질렀더니 아주머니가 그만 수선 떨고 피나 뽑아 하시는데 피를 알아야 뽑지 않아요. 아주머니가 이것이 피야 하고 가르쳐 주셔서 피도 안답니다. 벼도 알고요.
7. 신랑이 교회 못 가게 해서 교회 몰래 간 얘기
그렇게 살면서 교회 간다고 하면 신랑도 주인 아주머니도 반대하니까 교회 간다는 말을 못하고 샘골 간다고 하고 교회를 갔었답니다. 샘골에는 저희 형님과 시고님이 계시기에 때로는 형님이 일하러 오라고 하셔서 가기도 했고 일하다가 마냥 모를 내다가 교회로 예배드리러 도망도 가고 신랑은 교회 가면 큰 일 나는 줄 알고 못 가게 하니까 그러면서 저는 때마다 일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것을 느끼곤 했답니다. 그러나 저는 신랑더러 교회 갑시다. 가셔요 말을 못하고 기도만 했답니다. 언젠가는 돌아 올 것이니까. 왜냐? 가족 구원, 남편 구원 위해서 기도하니까. 돌아올 것을 믿기 때문이지요.
8. 집과 땅 산 얘기
그렇게 살다 보니 두 식구 아침 밥, 저녁 죽을 먹을 정도가 되었어요. 그런데 어떤 분이 안집에 놀러 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쌀 열 말만 있으면 논 세마지기와 집을 살 수 있데요. 저는 하나님 어떻게 해요 기도를 드렸습니다. 밤에 신랑이 돌아오자 그 말을 했어요. 그랬더니 글쎄 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저에게 지혜를 주셨어요. 그 집을 삽시다 하니까 샘골을 갔어요. 형님께 의논드리기 위해서 갔어요. 형님 말씀이 자리품을 내서 쌀 닷 말을 가지고 와서 집과 논 서마지기를 샀답니다. 자리품이라는 것은 쌀을 가져오고 일 할 때 쌀 한 말에 삼일을 일 해주는 것이예요. 그렇게 해서, 집이라고 내 논이라고 처음으로 장만을 했습니다. 일을 15일을 해주어야 되고, 그런 것이 이었요. 그러나 내 집이라고 가보니 방 한칸 조그만 한 것, 흙마루, 건너방, 부엌 모두 4칸 집인데 비어 있어서 집이라기보다 허숫간 같더라구요. 그래도 내 집이라고 청소를 하고 그 집으로 이사를 가는데 주인아주머니가 내 딸처럼 생각했는데 다른 집으로 가면 못 가게 할 텐데 집을 사가니 고맙다고 하시며 우셨답니다. 그 때 남편에게 우리 감사 기도합시다. 처음으로 말했어요. 남편 왈 별놈의 소리를 다한다. 너 미쳤냐 하고 나가는 거예요. 할 수 없이 혼자 앉아서 울며 감사 보다 하나님! 저 영혼 구원해 주셔요 하며 간구의 기도를 드렸답니다. 하나님은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시더군요. 무엇보다 내 남편 구원해달라고 간절한 기도를 드려서 매일 같이 기도를 드리며 이 몸을 희생 제물로 드리기로 생각했답니다. 영혼 구원을 위해서 한번은 교회가 너무 머니까 집에서 기도를 하는데 새벽 기도소리가 너무 컸나봐요. 너 나 죽으로라고 고사 지내는거냐? 저는 아니요. 당신 잘 살라구요. 그러던 중 동네 아주머니들이 밭을 매러 간다고하시기에 저도 끼워 주세요. 그 아주머니들은 나이가 지긋하시고 저는 아직 풋내기인데 감히 낄자리가 아닌데 끼워주시더라구요. 일은 밭매는 것이예요. 이제는 밭매는 것이 자신이 있더라구요. 일을 하면서 병아리 까는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그게 어떻게 하는 것이냐고 물었더니 첫 번째 닭을 알을 주어 안기면 21일이 되면 병아리가 나온데요. 그러면 병아리를 빼앗고 두 번째 알을 넣어 주면 된대요. 그래서 제가 저 그것 좀 주시면 안돼나요? 하니까 일을 잘하니? 하시며 일을 이틀해주면 된대요. 21일이 되니 예쁜 병아리가 나오기 시작하더니 23일이 되니 하나도 남기지 않고 23개가 다 나왔답니다. 전에는 기도가 어떻게 해요 했는데 이제는 감사합니다 로 기도가 바뀌어졌답니다. 병아리 키워 팔아서 돼지 새끼를 샀답니다.
9. 남편이 교회 간다고 핍박한 얘기
그랬는데 남편은 점점 교회 가는 것을 알고 못 가게 하려고 주일날이면 꼭 일을 시키지 않으면 남의 일이라도 보내는 거예요. 집의 일을 하면 부지런히 하고 교회 갔다 와서 부지런히 하면 되는데 남의 일을 보내면 할 수 없이 낮 예배를 못가고 밤 예배는 일이 아직 끝이 나지 않아도 저는 가요 하고 집에까지 한 숨에 달려와서 교회로 달려갑니다. 물론 저녁밥도 못 먹고 가지요. 교회를 가자면 공동묘지 한 복판으로 가는데요. 공동묘지에서 사람 소리가 나더라구요. 비가 부술 부술 오니까 저는 교회 가는 사람들인가 하고 같이 가세요 하니까 빨리와 하는데 아는 목소리가 아니더라구요. 그 때엔 머리가 쭈빗하며 몸에 소름이 돋더라구요. 그래 저는 믿는 사람들아 찬송을 부르며 교회를 갔던 때도 있었답니다. 그러면 그럴 수록 방한심이 생기더군요. 저녁 예배 드리러 가면 일하고 밥도 안먹고 교회에 미쳤느냐고 하지만 그 속심은 교회 못가게 하는 것이지요. 그 먼 길 공동묘지를 밤에 다닌다고 간데가 부풀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다 술수 였답니다. 한 번은 추운 겨울 날 수요 예배를 드리러 분홍저고리와 남치마를 입고 갔는데 눈이 많이 와서요. 눈에 빠지며 집에를 왔더니 치마 위에는 눈이 묻어서 얼어 버걱 버걱하며 집에 오니 싸리짝 문은 열고 들어 갔는데 방문을 잠그고 안 열어주는 거예요. 할 수 없이 나뭇간에 엎드려 기도를 드렸어요. 저 영혼 구원해달라고 기도 드렸어요. 얼마나 추운지 진짜 고드름이 될 것 같더라구요. 그래도 문을 안 열어 주니 나무를 이불 삼고 나뭇간에서 엎드러져 있는데 주여 소리 밖에 안 나오더라구요. 모진 것이 잠이라더니 밤이 오랬는데 남편이 뒤에서 저를 꼭 껴안으며 하는 말씀이 당신은 다 좋은데 교회만 안 가면 제일이라는 거예요. 교회만 가지 말라는 거예요. 그 때 제가 정색을 하며 돌아 앉아 무엇이라고 말했을까요? (퀴즈) 당신은 예수만 믿으면 제일 좋은 남편인데 나는 당신하고는 못살아도 예수 안 믿고는 못살아요”. 그랬더니 방으로 들어가자는 거예요. 밤은 깊은데 등잔불을 켜놓고 밤새도록 싸운 셈이지요. 그 밤에 교회 가도 할 일만 다하고 가라는 승낙을 받았어요. 그래서 때는 이때다 하고 할 일만 다하면 당신도 주일날 교회 가지요 하니 대답이 없더라구요. 그렇게 그 밤을 세우고 속으로 하나님 저 영혼 구원해 주세요 하고 새벽기도를 갔답니다. 새벽 기도를 갔다 오니 남편은 잠을 자더라구요. 저는 불을 떼고 밥을 해놓고 깨웠더니 그 때부터 마음 놓고 교회 다니게 되었답니다.
10. 육이오 피난 얘기
그렇게 사는데 왠일입니까? 육이오가 났다고 피란민들이 내려 오더라구요. 그래도 저의 부부는 열심히 살았어요. 저의 남편은 쌀 닷 말을 지고 서울 마포를 걸어가서 팔고 거기서 물건을 사가지고 오면 저는 그 물건을 팔면 쌀 다섯 말이 남았답니다. 그래서 육이오 때에 저희는 돈을 벌었는데 쌀 열가마를 벌었답니다. 이게 왠 말입니까? 열심히 살려하는데 일사후퇴라는 난리가 났답니다. 육이오 때는 교회를 못 간적도 있었답니다. 하나님! 죄송합니다. 기도를 드렸어요. 주일날 육이오 때입니다. 일군을 오명을 얻어서 일을 하는데 밥을 해서 이고 밥을 내 가는데 밥그릇을 이고 넘어진 거예요. 다행히 밥을 다 엎어지진 안아서 그대로 그 밥을 먹은 적도 있어요. 주일 날 일을 하면 어떻게라도 일을 저지른답니다. 그래도 깨닫지 못하고 주일 날만 골라서 일을 한답니다. 그런데 한 번은 이장이 가마를 칠 줄아느냐 묻기에, 예! 칠줄 안다고 했어요. 한번 치지 않겠느냐고 하시기에 친다고 했어요. 가마만 치면 유한비료를 준다고 하면서 이장이 나가시기에 유한 비료가 얼마나 귀한데 못자리도 오줌을 주어 기를 때인데 그래서 남편에게 말을 하니 남편이 가마를 칠줄 안답니다. 저도 일본 정치 때 쳐봐 칠줄 안답니다. 그래서 그 좁은 방에서 새끼를 꼬는데 저는 하루 밤에 가마 열짝거리를 꿔는데 남편은 두짝거리 밖에 못꾸는거예요. 그래서 밤이면 새끼를 꼬고 낮이면 가마를 치는데 하루 열두짝을 치며 열심히 쳤더니 가마 값은 돈으로 받고 유한비료를 반월면에서 두 사람을 주는데 두 사람 중에 들기도 했답니다. 그 유한비료로 못자리를 잘 길렀답니다. 그랬는데 수리 조합이 없으니까 농사짓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논은 황기가 나고 물은 없고 아침마다 웅덩이에서 고래박질을 해서 물을 조금씩 축이여 줍니다. 먹는 것은 제대로 먹고 그렇게 하는 중에 몸이 지쳐서 능막염이 제게 들었어요. 그러니까 시아주버니 두 분이 친정으로 보내라고 하시니까 친정으로 가라는 거예요. 그래서 집에 가서 한약을 먹으며 쉬며 한달 되니 깨끗하다는거예요. 그래 집에 간다니까 어머니 말씀이 데리러 올 때까지 가지 말라는 거예요. 그래 며칠 더있다가 집으로 와보니 키가 조그마한 여자가 있더라구요. 그래 누구냐 하니까 이 집 주인이래요. 이 집 주인은 나라고 하니 슬며시 없어 졌어요. 그렇게 살았답니다. 도로 친정으로 아니면 도망을 가고 싶었는데 하나님 어떻게 해요 또 기도를 드렸더니 마음에 그 영혼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에 도망을 못가고 살았답니다. 그래도 교회 못가게 여전히 남편이 핍박하는거예요. 그래서 교회를 몰래 내 나름대로 열심히 다닌다고 다녔습니다. 열심히 살아서 쌀 열가마 만들었더니 이게 왠 말입니까? 일사 후퇴라는 난리가 났어요. 그런데 음력 12월 15일날 사형제분들이 한날 군인병으로 나간데요. 그래서 쌀도 열가마나 있고 집도 있고, 나 혼자 산다니까 아무 소리 없이 나가더니 저녁 때에 큰 댁으로 다 가져 가는거예요. 또 하나님 어떻게 해요 하면서 울며 겨자 먹는다는데 할 수 없이 따라 갔지요. 그리고 그 때는 내복이 없으니 그 밤에 등잔 불 밑에서 명주 바지 저고리를 잘라서 몸에 맞도록 내복 모양을 만들어서 아침에 속에 입히고 광목바지 저고리를 위에도 입혀서 수원역까지 걸어서 눈길을 배웅하고 왔답니다. 그 후 한달 두 달 되니 다른 사람들은 걸어서 오는데 이집 식구들은 안돌아 오더니 둘째 아주버니가 돌아 오시고 큰 아주버니가 돌아 오셨답니다. 그런데 형제들은 안 돌아오시기는 거예요. 그러는데 나중 돌아 오시는 동네 분들이 그 사람은 군대에 입대하여 강원도로 갔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러던 중 피란민들이 줄을 이어 내려 오고 집집에 피란민으로 꽉꽉 차는 거예요. 저희 큰 형님 친정 식구들에게도 열명이 넘게 왔어요. 그러니 쌀 퍼먹는 것은 물론이지요. 그리고 저희 작은 아버지와 작은 어머니 두분이 피란 하시다가 돌아 오신후 며칠 있으니 여기 저기서 폭격을 하니까 또 피란들을 가야 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피란 간데요. 그런데 큰 형님은 친정식구들과 같이 간데요. 또 어떻게요? 주님하고 저의 입에 말이 나오는거예요. 형님! 우리 끼리 가면 저도 가지만, 형님말이 우리끼리 어디로 가느냐하고 당신의 친정식구들하고 간데요. 그럼 저도 친정 식구 작은 아버지 따라 갈거예요 하니까 형님은 안돼다는 거예요. 형님 따라가면 고생이 뻔한 것 아니예요. 조카가 남매가 있으니까 한 사람씩 업어야되요. 2살 3살짜리 어린애를 하나씩 업으면 아무 것도 가지고 갈 수없고, 나가면 어떻게 해요? 친정 식구 따라 간다니까 형님 말씀 대뜸 “이년아 너는 생전 서방 등골만 뽑아 먹다가 죽을 년”이라고 하며 머리를 잡아 끌어내면서 저더러 나가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나 저는 안 나가려고 싸리 문 고리를 잡고 매달려 있었답니다. 형님이 실컷 저를 때렸는지 그냥 피란을 떠나시더라구요. 그래 저는 피란민들과 쌀 퍼먹고 있었더니 삼일 만에 도로 형님이 돌아 오시더라구요. 그러니 제가 거기 있을 수있겠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피란을 내려 가는데 저는 친정 집 달월로 들어 갔어요. 그러니 걸어서 어머니 하고 들어 가니 어머니 아버지가 깜짝 놀라시는 거예요. 인민군이 개쏘다니듯 하는데 이게 왠이야? 하시며 말도 못하게 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그 밤에 아버지께서 광에다가 방공호를 만드시고 저와 저의 사촌 동생을 방공 호에 두고 아버지 어머니가 아무도 없으면 밥을 갔다 주시고 해서 그 난리를 지났답니다. 그러고 봄이 되었어요. 그래도 어머님은 저더러 시집이라고 집에 가보라 하는 거예요. 그래서 비료를 조금 얻어 가지고 종일 걸어서 집이라고 오니까 피란민한테서 남자 검은 고무신 한 켤레를 사두었는데 그 신이 마루 앞에 있더라구요. 이것이 왜 여기 있느냐하며 들어가니 큰 형님이 서방님 오셨어 하시는 거예요. 어떻게 왔어요. 그말 한마디 하고 나가서 저녁밥을 해서 먹고 치우고 방에 들어가서 정식으로 남편에게 인사를 했어요. 그랬더니 남편 왈 (퀴즈) 무엇이라고 했을까요? 첫마디 말 대답입니다. 교회에 잘 다녔소 하는 것이랍니다. 저는 그 말에 모든 것이 다 사라지는 듯 했어요. 그래서 저는 고마워요 하고 감사합니다 하고 그대로 남편 가슴에 푹 엎드러져 아무 말도 못하고 실컷 울었답니다. 물론 둘이 같이 말이지요. 그리고 자세히 보니 사람이 사람 같지 않고 송장 같더라구요. 훈련도 제대로 받지 않고 전쟁에 나가서 전쟁하다가 옆구리에 총을 맞고 대구 제이 육군 병원에서 제대를 했어요. 그러니 사람이 혼자 서서 마루 위를 못 올라갈 정도 였어요. 그래 저는 다시 감사 기도를 드렸다구요. 왜냐구요? 그렇게 가족 구원 남편 구원을 위해 기도했더니 마침내 남편이 예수 믿는 사람이 되었고 그 때부터 저의 가족은 예수 믿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초신자가 샘골 교회를 낮예배는 드리지만 밤, 새벽기도는 참 어렵더라구요. 그런데 애기같이 마루도 못 오르는 사람을 데리고 그 사칸 집 피란민들이 지붕도 다 벗겨다 때고 울타리도 다 뜯어 때고 기둥만 서있는 집으로 이사를 갔답니다. 큰 형님이 쌀 한말 주시더군요. 더 주실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음력 3월 11일날 내 집이라는 곳으로 이사를 갔으나 방에 누워보니 별이 보이더군요. 그러나 쌀 한말로 몇일이나 살겠어요. 그 집은 어떻게요. 그래서 샘골로 가서 아주버님. 저의 집이 별이 보여요 하니까 동생이라고 하면 끔찍이 여기시는데 그 다음날 짚을 소에다 실고 오셔서 영을 엮어서 지붕을 해주셨어요. 그 때 저는 기도가 어떻게요가 변해서 감사해요 두 가지밖에는 없었답니다. 그래 또 감사합니다 하고 기도를 드리고 그러나 먹을 양식이 없지 않아요. 그 옆집에 가서 일해드릴게 양식 좀 주세요 했더니 보리 쌀 한말을 주시며 모 내다랄고 하시더군요. 보리쌀 한말로 한달도 못살았어요. 쑥 뜯어다가 밥에 섞어서 남편은 보리를 많이 골라 주고, 저는 쑥만 먹고 하면서 그래도 주일 날이면 교회 가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그렇게 살면서 또 닭 안는 것 한 마리를 빌려서 병아리 까고 병아리 주고 돼지 새끼 사고, 돼지 주고 송아지 사고, 그렇게 살다가 큰 딸을 결혼한지 5년 만에 예쁜 딸을 낳았답니다. 돼지가 참 잘자라더군요. 그렇게 살다 두 번째 아기를 갖게 되었어요. 한번은 밤예배를 드리러 교회를 저 혼자 애기를 업고 가는데, 공동묘지를 지날 때에 갑자기 눈 보라가 몰아쳐서 고생한적도 있답니다. 그렇게 사는데 어떤 분이 집이 일곱칸 짜리가 있는데 쌀 한가마니만 주면 산대요. 그런데 저의 남편이 그것을 가서 샀어요. 올개미 없는 개장수지요. 돼지 팔고 장례쌀 얻고 해서 그 집을 샀답니다. 그런데 집을 지으려면 터가 있어야지요. 남편이 어디로 돌아 다니더니 집터를 구했대요. 물론 도지 밭이랍니다. 그리고 저의 친정 아버님이 대목이셔서 그래서 저의 아버님이 오셔서 그 집을 뜯어다가 어엿한 목재집을 지었주었답니다. 그 집 안방 한 칸 겨우 꾸미고 들어가서 둘째 딸을 낳았답니다. 큰 딸 혼자 있을 때에는 혼자 두고 다닐 수 없어서 많이 다니지 못했는데, 갯펄에 맛잡으로 가도 애기를 업고 가서 펄에 앉혀놓으면 거기 앉아서 맛 다 잡고 나오도록 혼자 놀았어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맛이고 나오는 것도 힘이 든다는데 저는 맛이고 애기 업고 그리고 다녔어요. 그러다가 둘이 놀라고 집에 두고 다녔어요. 한번은 못자리를 매야한다고 오늘은 못자리를 좀 매라고 하여서 아이 하나를 업고 하나는 걸리고 메꾸리를 머리에 이고 못자리를 매러 갔어요. 간신히 기어다니는 아이를 메꾸리안에 뉘어 놓고 네 살짜리 보고 아기 잘 보라고 하고 논으로 들어 가서 한참 아무 소리가 없으니까 잘 노는 줄 알고 일을 하는데 큰 딸이 엄마 애기가 업어 하는 거예요. 깜짝 놀라 뛰어 나가보니 방죽 밑이 한길반은 되는데 돌이 안된 것이 그 논으로 빠진 것이예요. 그래 꺼내 논물에다가 씻겨서 안고 울며 집으로 돌아와서 그날 그 못자리를 안맨적도 있답니다. 그랬는데 그해 8월에 가서 아이가 열이 많이 오르고 앓더니 몸이 파김치 같이 힘이 없어서 병원에 데리고 갔어요. 소아마비라는 거예요. 고치려고 별별짓 다해도 결국 못고치고 장애자가 되었답니다.
11. 맥추감사절 지킨 얘기
그러던중 교회에서 맥추절을 지키는데 제일 처음은 보리쌀 한말 이고 가서 드렸답니다. 그해 추수감사절 때에는 쌀 세말을 드리고 먹을 것이 없어도 기쁜 거예요. 그렇게 감사가 늘고 남편이 속장 직분을 받고 저는 집사가 되었어요. 또 딸을 낳았어요. 그 때 한참 성남이 개발될 때예요. 남편은 성남 가서 부인 얻어서 아들 얻고 살고 싶데요. 그 때는 소도 몇 마리 있었는데 그 중에 한 마리는 팔아서 가지고 가야 된대요. 그런 그럼 그러세요 하고 그 아래 집에 있은 소 장사에게 가서 우리 큰 소 하나 사 가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지금 돈이 없고 얼마 가격을 정하면 팔아다가 준대요. 그러케 하라고 소를 주었어요. 그리고 남편은 집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소 장사가 그 날밤에 소 판돈 받아 가지고 왔어요. 그 다음 날 아침에 남편은 소 판 돈을 가지고 성남으로 갔답니다. 한 살, 두 살, 일곱 살인 세 딸을 데리고 나 혼자 산다고 생각하니 좋지는 않더라구요. 그렇게 사는데 한달이나 될까요. 그런데 돈만 다 까먹고 술만 마시고 돌아왔더군요. 또 가고 싶으면 가고, 갔다가 아무 때라도 돌아오고 싶으면 돌아 오라고 그랬더니 몇 번 갔다 오더니 소만 한 마리 더 버리고 말았답니다. 저 혼자 아이 셋 하고 소 두마하고, 돼지하고 살았지요. 그런데 큰 댁 조카가 돌이 안지났는데 큰 형님이 아파서 젖을 먹이면 안된다구 누구를 준대요. 큰 아주버님들이 저더러 하는 말이 그 아이를 양아들로 키우라고 하셔서 데려다가 길른 적도 있답니다.
12. 추수 감사한 얘기.
하나님이 어려울 때 그 때 그 때마다 힘 주시고, 지혜도 주시더군요. 무엇 보다 하나님께 예배드리기를 힘쓰니까 하나님이 복을 주셨어요. 물질의 복을 주셔서 추수 감사절 때 쌀 12가마를 드릴 수 있게 해주셨어요. 그 때는 소가 새끼를 낳으면 쌍둥이를 낳고, 짐승을 치는 재미가 있었어요. 그러나 남편은 아들이 소원이래요. 그렇지만 저는 하나님이 필요하면 하나님이 주실 것이라고 아들 달라고 기도를 안했어요. 그러나 남편이 황소 한 마리를 가지고 가서 다 날리고 나니 하나님! 아들 주세요 하고 기도를 드렸어요. 하나님이 아들 주시면 하나님께 드리겠어요 하고 서원 기도를 드렸는데 그 후로 딸을 세명을 주시더군요. 그래서 딸이 여섯명이랍니다. 그 때는 아들 둘을 주시면 하나는 하나님을 위해서 드리고, 하나는 제가 데리고 살께요 라고 기도를 했더니. 막내 딸을 낳은 후 다음 해에 아들을 주시더군요. 그 아들을 하나님께 드리기를 작정하고 감사 기도를 드렸어요. 그런데 그 아들이 건강하고 키고 크고 참 잘생겼어요. 공부도 잘 하고, 잘 자랐답니다. 또 막내 아들을 주셔서 팔남매가 되었어요. 그리고 살다 보니 제 몸이 많이 아팠어요. 그 팔남매를 키우며 공부를 시키니 얼마나 힘들겠어요. 제가 아파서 수원 기독병원에 가서 진차를 해보니 류마치스 관절염이래요. 뼈 마디가 나온다는 거예요. 그 전에 교회 가기 가 힘들 정도로 아파서 기도할 곳이 더욱 필요했어요. 저희 집에서 기도를 드려보기도 했지요. 교회 못 가는 사람들하고 저희 집에서 예배를 드려보기도 했지요. 그러니까 샘골교회에서 화요 어린이 기도회가 있었는데 샘골 가기가 어려울 때, 눈비 올 때, 추울 때는 저희 집에서 모였어요. 그러나 교회가 너무 멀고 힘들어서 교회 다니는 분들이 몇 분이 모여서 의논한 결과 남의 묘에서 새벽 기도회를 하기로 약속을 했어요. 그리고 새벽 기도회에 그리로 기도를 하러 가서 기도를 했답니다. 몇 칠이 지났습니다. 저의 기도 제목은 마음 놓고 기도할 수 있는 집을 주세요 하고 기도를 했습니다. 몇 칠이 되는 날 어떤 동네 아저씨가 승철이 이놈의 자식아! 천작하면 저나 하지 왜 동네 사람 잠 못 자게 하느냐고 작대기를 끌고 때려 죽인다고 좇아 왔어요. 그래서 다 도망을 갔답니다. 그래서 그 다음 부터는 교인들이 큰 소리로 기도를 못하고 몰래 더 일찍 기도를 했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시고 그 해에 샘골 교회 당회에서 본오 교회 세우기로 가결하고 이승철 권사를 장로로 세우고, 본오교회가 탄생하게 되었답니다. 박용대 전도사님을 담임 전도사님으로 모시고 예배를 드리는데 가정은 12가정이 해도 12사람도 못 모였어요. 그러나 얼마나 좋은지 저는 전도사님이 입에 있는 것을 주셔도 받아 먹을 정도였답니다.
13. 남편이 술 끊게 된 얘기
그렇게 살면서 남편은 술을 많이 마시는 거예요. 얼마나 많이 마시는지 몰라요. 가정주가 얼마나 독한지 지금 소주 보다 더 독한 것 같아요. 그것을 한 동이를 들고는 못가도 마시고는 간답니다. 그렇게 마셔도 얼굴도 붉어지지 않고 오히려 노래져요. 그러나 어떡합니까? 기도할 뿐입니다. 그렇게 술을 많이 마시더니 권사 직분 맡더니 하루 아침에 술을 딱 끊더라구요. 또 한번 감사 기도를 드렸답니다. 그러니 술친구들이 가만히 두지 않더라구요. 남편이 솜바지 저고리를 입었는데 그 옷에 목을 들고 그 독한 막걸리를 붓더라구요. 술에 젖은 옷 솜을 뜯어내면서도 기뻤답니다. 왜냐하면 남편이 예수 믿고 술 딱 소리가 나게 끊었으니까요. 그렇게 하기를 다섯, 여섯 번 했답니다. 그 다음은 저 자식은 예수쟁이야 하고 술친구들이 다시는 남편에게 술을 권하지 않더라구요.
14. 십일조 드린 얘기
그런데 남편이 추수감사절에 예물은 드렸지만 아직 십일조를 드리지 못하는 것이 문제였어요. 남편은 우리가 추수 감사절에 쌀 열 두가마니를 드리는 것에 십일조를 이미 포함했는데, 또 어떻게 어려운 형편에 십일조를 드리냐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번 것 중에서 그것도 몰래 십일조를 드렸답니다. 그러다가 남편은 홍찬의 장로님이 남편을 불러서 십일조하면 하나님이 복 주신다고 하면서 십일조를 하라고 하셔서 그때부터 십일조도 하게 되었답니다.
15. 새벽 기도한 얘기
저는 본오교회 개척해놓고 몸이 아파서 새벽 기도를 몇 일 못한 적이 있어요. 새벽 기도시간에 집에서 잠을 자고 있는데 꿈에 남편이 노란 벼를 소에다 잔뜩 싣고 오면서 벼 쌓을 자리에 괴목을 저더러 놓으라고 하는데, 제가 저기 저기 아다 놓으라고 했어요. 그럼 도로 싫고 간다는 거예요. 안돼요. 제가 괴목이 될게요 하다가 잠을 깨어보니 새벽기도 시간입니다. 그래서 그날부터 다시 새벽기도를 했어요. 아파서 못 일어나는 날 빼놓고 새벽기도를 늘 했어요.
16. 류마치스 관절염으로 기도한 얘기
그런데 몸이 너무 아파서 수원 기독 병원에 갔어요. 류마치스 관절염은 몸에 어느 곳이든지 뼈가 튀어 나온데요. 저는 허리로 나올 가능성이 많데요. 그래서 집에 와서 의논하고 칠보산 기도원으로 갔어요. 일주일을 작정하고 말이예요. 삼일 만에 새벽 기도를 마치고 기도 육은 죽고 영은 산다는 제일 굴로 들어가서 촛불을 켜놓고 기도를 하는데 뱀과 사자가 덤비는 같았어요. 그래서 사탄아 물러가라 하고 소리를 치고 내가 너한테 안진다고 막싸움을 했어요. 또 악어가 나타나더니 저를 잡아 먹는데요. 저는 너한테 안진다고 막 싸우는데 위에서 빨래판 같은 널 조각이 내려오더니 악어 허리에 얹히는 동시에 한 쪽은 남편이 앉고 한편은 저의 큰 아들이 악어를 타고 앉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악어 머리를 깔고 앉아서 악어 입을 찢어 죽이고 정신없이 누워 있다가 잠이 든거예요. 어느 때나 되는지 모르는데 본오교회에서 온 안복옥을 찾는다는 방송이 들리기에 나와서 내려 와 보니 전도사님 내외 분이 오셨더군요. 그래서 전도사님과 사모님 저 셋이서 기도를 하며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저는 목사님의 눈물을 많이 뺀 사람입니다. 그런 후 허리로 나온 다는 류마치스가 손가락으로 나왔답니다. 그래서 병원에 갔더니 원장님이 이상하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그 이야기를 했더니 원장님이 무릎을 치며 그러면 그렇지 하시는 거예요. 원장님이 예수를 믿는 분이기기에 아신 거예요. 저는 아직 까지 큰 불편 없이 손가락을 쓰고 있답니다. 그렇게 살면서 하나님 앞에서 예배드리는 것은 기어서라도 갈 수 만 있으면 예배 드리러 갈 겁니다. 그런 생활 하면서 저는 새벽 기도 안하면 죽는 줄로 알아 옛날에는 시계가 없어서 아무 때나 닭이 울면 나갔답니다. 어떤 닭은 12시에 우는 닭도 있답니다. 새벽인줄 알고 교회 간적도 있답니다. 그런 저는 세 번만 차면 새벽 기도 갈 수 있어요. 지금은 시계 맞추어 놓고 시계가 울면 세 번만 차세요. 첫 번째 이불 차시고, 두 번째 방문 차시고, 세 번째 대문 차시면 새벽기도할 수 있어요. 저는 그렇게 기도합니다.
17. 주일 학교 어린이 교회 인도한 얘기
경건하게 살려고 하면 어려움도 따라옵니다. 팔남매가 잘 자라고 공부도 잘하고 걱정할 것이 없어요. 7번째 주신 큰 아들이 건강하게 자라 중학교를 들어가기 전에 주일 학교 교사를 한다고 다녔어요. 교회에서 저의 가정 식구가 열명인데 배웃 동네 백여 호에 아이들이 많았어요. 주일 날이면 저희 식구들은 동네 아이들을 부르러 갔답니다. 저는 교인들의 집을 한 바퀴 돌고 교회 앞에서 안내를 하고 아이들이 누가 안오는 것을 금방 안답니다. 그래서 아이가 안온 집은 찾아가서 어린이를 업고 오기도 하였답니다. 지금의 윤길중 집사를 제일 많이 업고 교회로 온 것 같아요. 그렇게 지내는 중 저희 가정은 학생이 오륙명이 되었어요. 얼마나 바쁘겠어요.
18. 위암으로 기도한 얘기
그렇게 살다보니 먹을 것도 못 먹고 물만 마셔도 토해서 아무 것도 못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안양 어느 병원에 갔더니 위암이라는 거예요. 제가 정신이 번쩍 나더라구요. 그래서 한얼산 기도원에 간다고 했더니 남편과 큰 딸, 조카 사위, 조카 딸이 함께 기도원에 갔어요. 그런데 누가 큰 조카 사위 가방을 집어 갔어요. 저는 삼일 금식 기도를 하고 난후 집회 시간에 목에 무엇이 걸린 것 같더군요. 그래서 칵하고 뱉었더니 피고름이 나오며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갔더니 피고름이 쏟아지는 거예요. 저는 이제 죽나 생각했답니다. 그 다음 날 아침에 넷째 딸이 기도원에 왔더라구요. 왜냐하면 교회에 문제가 생겨서 엄마가 와야 해결한대요. 그래서 사일 만에 집으로 내려 왔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위암은 저에게서 떠나갔답니다.
19. 큰 아들 잃은 얘기
저의 소원은 배웃 동네 사람들이 다 예수 믿고 구원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저의 자녀들이 잘 자라서 소, 중, 고 다 다니고 있었지요. 그러던 중 저의 큰 아들이 중 3 졸업하고 고등학교 시험을 봤어요. 입학날이 다 되었는데 갑자기 배가 아프다는 거예요. 그래서 수원에 한 병원으로 갔더니 맹장이라는 거예요. 그래 수술을 했어요. 삼일 만있으면 고등학교 입학 날입니다. 또 하나님 어떻게 해요 하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다 실밥도 안 뽑은 채 고등학교를 갔답니다. 그대로 학교를 다니는데 배가 자꾸 아프다는 거예요. 그래서 학교 끝나고 병원에 갔더니 큰 병원으로 가라는 거예요. 그래서 서울 세브란스 병원을 찾아 갔는데 진찰 하더니 의사 선생님이 저더러 이리로 오라는 거예요. 그래 들어 갔더니 선생님이 고환 암이라는 거예요. 저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답니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서 집으로 공중 전화를 찾아 집으로 전화를 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때는 차가 없어서 동차를 타고 수원에 가서 수원역에서 기차를 타고 세브란스 병원을 데리고 다녔어요. 그 때 안산시가 계발되어 철거하라는 소리도 있었어요. 그런데 병원을 다녀도 아무런 효과도 없어요. 날마다 더해도 병원을 데리고 다녔어요. 병원에서 입원도 안시키고 다니라고 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아들이 하는 말이 무어라고 말하는지 아세요? 나도 새 교회에서 예배 드리고 싶어요. 나도 새 집에서 살고 싶어요. 그런 말을 하는데 하루는 엄마 나 좀 도와 줄 수 없어. 하길래 무엇을 도와줄까 하니까. 아니예요 하고 그 말이 마지막이랍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10시에 하나님 나라로 갔답니다. 17살 나이로 그때는 저는 하나님이 이럴 수가 있을까 하고 난 몰라 난 몰라 하고 울었더니 작은 아들 종수가 엄마! 울지마. 형 대신 내가 있잖아 하며 위로를 해주더라구요.
그러나 저는 교회 생각 보다 저 자신이 비참해지더라구요. 하나님 믿더니 그 봐라고 하는 남을 의식 했답니다. 그래서 사람 모인 곳에 가지도 않고 예배만 드리고 아무도 안 만나고 집으로 갔답니다. 그 때 교회가 철거할 때입니다. 저는 교회 짓기 전에는 집을 안 짓는다고 말은 했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조립식으로 저의 집 뒤에다 짓고 교회 봉헌과 이승철 장로님 취임식을 했습니다. 그 때 저는 경운기를 타고 교회를 다녔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본오교회를 건축할 때에 저의 목사님 가정 네 식구가 저의 건너 방에서 사시고 또 다른 집에서 사시며 교회를 건축했습니다. 그 기도할 집이 없어서 기도할 집을 달라고 했는데 교회가 세워진지 벌써 29년이 되었어요. 이제는 마음 놓고 기도할 수 있게 되었는데 왜 기도 안하세요. 이제부터 기도 열심히 합시다. 내일 일은 난 몰라요.
20. 새벽기도 하다가 환상 본 얘기
한번은 새벽 기도를 마치고 기도를 하고 있는데 환상 중에 교인들이 교회에 많이 모였어요. 지금 우리 목사님이 큰 수레를 끌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시려고 끌고 가시는데 구경꾼도 있답니다. 임원들은 옆에서 밀고 뒤에서 밀고 성도들이 함께 하여 미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보고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이 모두 하나가 되는 구나. 목사님이 끄실 때에 구경 하지 말고 말씀에 순종하여 힘을 다하여 밉시다. 그리고 저 산 꼭대기를 함께 가십시다. 찬송가 주안에 있는 나에게 찬송이 나오더라구요. 또 우리 예배드리고 축도 끝나고 목사님손이 내려오시기 전에 나가지 마세요. 축도 하실 때에 축복이 목사님 손으로 자욱한 안개 같이 내려오는 것을 보는데 안개 밑으로 빠져 나가는 것을 보고 예배드리다가 축도 전에 나가면 예배 안 드린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남편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은 기도하시고 남편에게 순복하세요. 언제까지냐고요? 그분이 예수 믿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설 때까지 남편을 하나님 다음으로 공경하세요. 남편에게 말도 막하고 그러지 말고 잘 대접하세요. 교회 와서만 잘하고 집에서 남편에게 막하면 남편 구원받게 하기 어려워요. 저는 남편 구원받게 하기 위해서 하루 종일 일하고 저녁 밥 안 먹고 그 밥으로 남편에게 드렸답니다. 그리고 남편들에게 왜 찬밥 드려요? 그러지 말고 따뜻하게 해드려요. 10분만 하면 해드릴 수 있어요. 저는 평생 남편에게 찬밥 안드렸어요. 그래도 먼저 가셨지만. 그렇다고 남편들은 대접 받기만 하려고 하지 말고 아내를 사랑해 주세요. 아내를 내 몸 같이 사랑하라고 성경에 말씀하셨습니다. 할 말은 이 밤을 세워도 못다 하지만.
21. 투병 생활 중에 하나님의 은혜 깨달은 얘기
왜 교회 얘기는 없느냐고요? 저는 아이들 일곱을 키우며 일하다가 힘이 지치면 병원을 자주 갔어요. 그래도 예배드리는 것은 철칙으로 삼았어요. 예배드릴 때 하나님이 복 주시는 것을 알기 때문이지요. 제가 할머니를 따라서 8살 때 교회 다니게 되었다고 하였지요? 한번만 빠지면 선생님들이 가정 심방을 오셨어요. 그러니까 어머니가 교회 빨리 가라고 하셨어요. 그러다 보니 믿음이 생겼어요.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하지 않았어요?
교회를 짓기 시작했어요. 교인들이 교회 기초 공사하는데 필요한 돌을 주우려고 교인들이 나가면 저는 집에서 밥을 해서 내 보내고 국수를 화덕에 때서 삶아 보내곤 했어요. 몸이 너무 아파서 일을 할 수가 없어서 일을 못하곤 했답니다.
그러면서도 농사일을 했어요. 그러다 보니 저의 몸이 말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안산 고대 병원에 가서 진찰을 해보니 허리뼈가 망가져서 수술을 해야 한 대요. 그래서 수술을 하였어요. 수술 후 삼일이래요. 그러나 저는 금방 지난 것 같았어요. 저의 아들 이종수가 저를 안으며 엄마 토할 것도 없어요. 토하지 말고 참아 하는 말이 귀에 들리더라구요. 그 때 저는 정신이 나서 오늘 까지 산답니다. 수술 하고 얼마나 아픈지 예수님 십자가 지실 때 얼마나 아프셨을까 생각하면서 참았답니다. 그 때부터 저는 몸이 남의 뼈 4개 넣고 양쪽으로 허리에 꺽쇄 물리고 살고 있답니다.
그런데 수술 한지 만 일년 만에 이승철 장로님이 병이 나서 앓다가 치매까지 왔어요. 5년은 병원에 다니면서 앓았어요. 한번은 모시바지 저고리를 입혔는데 저의 집에 있는 큰 손녀가 7살 때였어요. 그 아이들에게 할아버지를 좀 보라고 하고 잠깐 밭에 가서 파 뽑아 가지고 왔는데 시간은 한 10분 정도 되었는데 사람이 없어졌어요. 예은아 할아버지 어디 가셨니? 했더니 모른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이쪽으로 찾아 봐 하고 온 동네를 다 다녀도 없어요. 어떤 사람이 그래요. 어떤 아이가 저기서 울면서 하얀 옷 입고 하얀 고무신 신고 얼굴에 파란 점 있는 할아버지 못 봤느냐고 물으며 울고 있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뛰어 와 보니 그 더운데 길에서 울며 땀을 흘리고 있기에 집으로 데려다 놓고 또 찾아 나서서 다니다가 기동대로 사람을 찾는다고 방송을 하러 갔더니 누가 그 양반 깨끗하게 옷 입고 논으로 가시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논으로 따라 가보니 논에 들어가서 논둑에 풀을 뜯고 있는 것을 보고 제가 너무 약이 올랐어요. 거기서 죽으라고 하며 우리 같이 죽자고 길바닥에 드러누워서 같이 죽자고 하였답니다. 그 때에 누구 한분이 오시더라구요. 바로 박장로님이 논에 가신다고 하시지만 무슨 일인가 하고 오신 것 같아요. 그 다음으로 몇 년 다니시다가 아주 자리 보존하시고 육년을 투병생활 하시다가 2001년 1월 말에 하나님 나라에 부름을 받았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저를 1분 1초도 떠나지 않으셨어요.
22. 목사님 섬긴 얘기
우리 믿는 사람들이 목사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저는 열심히 모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여서 기도하고 나가서는 전도하면 제일 기뻐하실 줄 압니다. 목사님은 외로우셔요. 우리만 외로운 것이 아니예요. 저는 농사지을 때 제일 먼저 따는 것은 목사님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갔다 드리곤 했으나 이제는 갔다 드릴 것이 없어요. 목사님 무엇을 드릴까 생각하다가 물을 떠다 드리고 싶었어요. 무슨 물이냐고요? 인삼, 대추, 오미자, 영지, 칙을 넣고 두 시간이상 끓여서 냉장고에 넣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여름에는 시원하게 내 생명 다하기 까지 드리려고 했는데 제가 작년에 다리 부러지고 물을 가지고 다닐 수가 없어서 못하니 어느 날은 죄송할 때도 있답니다. 낮 예배는 드링크를 드리는데 어떤 집사님이 드링크 제가 갖다 드리면 안돼요 하기에 새벽 물까지 다 해 하니까 아무 소리가 없더라구요. 지금 이라도 하시면 좋겠는데요. 누구든지 하고 싶으신 분이 있으면 하세요. 제가 가지고 다니기가 어려워서 그래요. 잠언 3장 9절에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런 말이 있습니다. 목사님은 하나님 다음으로 섬겨야 한답니다. 목사님을 옆집 아저씨 같이 찾아 와서 울고 기도해달라고 하지만 좋은 일이 있을 때는 언제 지나갔는지 모르게 하지 마세요. 모든 좋은 것을 목사님과 같이 하세요.
23. 막내 아들 이종수 선교사가 된 얘기
끝으로 저의 막내 아들 이종수 말입니다. 열 살 때 부흥 목사님 저의 집에서 쉬실 때에 부흥 목사님 가방 들고 다니며 나도 이 다음에 목사님 같은 부흥 목사님 될거예요 했거든요. 그리고 공부도 상위권에 들고 고등학교 3학년까지 유신 고등학교에서 장학금을 타고 했는데 고등학교 3학년 2학기 때 공부를 안 하고, 세상으로 나가서 대학을 안 간다는 거예요. 그 때 학교 수업료 내라는 돈도 다른데 다 써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돈을 또 갖다 내고 졸업을 시켰어요. 그러나 대학을 갈 수가 없잖아요? 그런데 대학은 고사하고 술 먹고 싸움을 하고 집에도 안 들어 오고 하니 어떻게 해요?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다가 저도 부흥 목사님 된다한 아들의 말이 생각나서 신학대학을 가라고 해서 대전 목원대학을 가서 시험을 봤더니 보기 좋게 떨어지는 것이에요. 그래서 마지막으로 협성신학대학교를 갔는데 하나님이 쓰시려는 거예요. 그래서 대학을 마치고 전도사로 서울 가서 봉사하다가 숭의 교회에서 대학원 졸업과 동시에 목사 안수 받고 지금 미얀마 선교사로 가서 충성하고 있답니다. 생각날 때 마다 기도 많이 해주세요. 선교사로 간다고 해서 저는 반대 했어요. 왜냐하면 아버지가 병중인데 형도 없고 저 하나인데 그리고 나가서 목사님 댁으로 왔어요. 목사님! 종수가 선교사로 간대요 하고 울었어요. 목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아버지도 그러시는데... 하나님 뜻에 맡기고 기도하시자고 하며 목사님이 기도를 해주셨어요. 하나님 뜻이라 믿고 보냈습니다. 하나님 쓰시려고 하시는 줄 믿고 감사를 드렸답니다. 그런데 요즘 폭탄 테러가 많고 가스 폭발 시키려고 가스 줄을 끊어놓는데요.
맺는 말
기도로 키운 자녀들이 세상으로 나가지 않았어요. 이제 딸들 여섯 명이 다 믿지 않은 집으로 가면 그 가정 구원시키고, 믿는 가정으로 가면 더 예수 잘 믿고 권사로, 사모로, 집사로, 평신도로 다 충성하고 있답니다. 한 명은 더 기도 많이 하라고 아직 기도제목으로 남아 있습니다.
2004년 8월 1일 아침에 다리가 부러져서 새벽에 병원에 입원을 하였어요. 그리고 수술실에 수술하러 들어가는데 저 혼자만 있었어요. 하나님 어떻게 해요 하고 난 몰라요 하고 기도를 드리고 있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거예요. 이사야 43장 1절 하반 절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하시는 거예요. 그 음성을 듣고 감사 합니다 하고 수술실에 들어가서 수술 받고 이만큼 다니게 되었어요. 이것도 하나님의 은혜랍니다.
딸들은 제가 로보트래요. 허리에 뼈 박고 꺽쇠 물리고, 다리에 쇠 박고 못 박고 나사 끼고 사는데 이만 하면 건강하지 않아요?
세월이 빠르게 지나서 어느덧 은퇴라구요? 은퇴가 아니라 천국 가는 길이예요.
우리 교회 세울 때 이 동네 사는 사람들 다 구원해 주세요라고 기도 했는데, 저는 은퇴하면서 이 기도 제목으로 여러분들도 같이 전도해 힘쓰셔서 귀한 인물이 우리 교회에서 많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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