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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을 아름답게 하시는 하나님(창 35:16-29)
운영자 2026-03-06 추천 0 댓글 0 조회 44
[성경본문] 창세기35:16-29 개역개정

16. 그들이 벧엘에서 길을 떠나 에브랏에 이르기까지 얼마간 거리를 둔 곳에서 라헬이 해산하게 되어 심히 고생하여

17. 그가 난산할 즈음에 산파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지금 네가 또 득남하느니라 하매

18. 그가 죽게 되어 그의 혼이 떠나려 할 때에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라 불렀으나 그의 아버지는 그를 베냐민이라 불렀더라

19. 라헬이 죽으매 에브랏 곧 베들레헴 길에 장사되었고

20. 야곱이 라헬의 묘에 비를 세웠더니 지금까지 라헬의 묘비라 일컫더라

21. 이스라엘이 다시 길을 떠나 에델 망대를 지나 장막을 쳤더라

22. 이스라엘이 그 땅에 거주할 때에 르우벤이 가서 그 아버지의 첩 빌하와 동침하매 이스라엘이 이를 들었더라 야곱의 아들은 열둘이라

23. 레아의 아들들은 야곱의 장자 르우벤과 그 다음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스불론이요

24. 라헬의 아들들은 요셉과 베냐민이며

25. 라헬의 여종 빌하의 아들들은 단과 납달리요

26. 레아의 여종 실바의 아들들은 갓과 아셀이니 이들은 야곱의 아들들이요 밧단아람에서 그에게 낳은 자더라

27. 야곱이 기럇아르바의 마므레로 가서 그의 아버지 이삭에게 이르렀으니 기럇아르바는 곧 아브라함과 이삭이 거류하던 헤브론이더라

28. 이삭의 나이가 백팔십 세라

29. 이삭이 나이가 많고 늙어 기운이 다하매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니 그의 아들 에서와 야곱이 그를 장사하였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02631일 주일낮설교요약문

제목: 끝을 아름답게 하시는 하나님 01

본문: 35:16~29

 

  서론: 인생의 마무리를 결정짓는 시선

  여러분, 여러분은 자신의 미래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계십니까? 누군가는 안개 낀 것처럼 암담하다 말하고, 누군가는 설레는 비전을 말합니다. 이 차이는 환경이 아니라 '시선'에서 옵니다.

  드라마의 주인공이 시련을 겪을수록 마지막 승리가 빛나듯, 우리 신앙생활도 이와 같습니다. 신앙은 마라톤입니다. 중간에 아무리 잘 뛰었어도 마지막 결승 테이프를 끊지 못하면 의미가 없습니다.   하지만 시작이 미흡했더라도 끝까지 달려 마지막 스퍼트를 내는 사람은 결국 승리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야곱의 여정 중에 일어난 세 가지 죽음이 나옵니다. 벧엘에서 드보라가 죽고, 에브랏 길 위에서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 죽으며, 마지막에 아버지 이삭이 죽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비극의 연속이지만, 하나님은 이 죽음들을 통해 새로운 세대와 역사를 열어가십니다. 우리 스스로는 인생을 접고 싶을 때가 많지만, 하나님은 어떻게 우리의 끝을 아름답게 빚어가시는지 본문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1. 슬픈 이름 '베노니'를 소망의 이름 '베냐민'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야곱 일행이 벧엘을 떠나 에브랏(베들레헴)으로 향하던 중, 라헬이 산고를 겪고, '난산'을 했습니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순간,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들은 라헬은 아이의 이름을 '베노니'라 짓습니다. '슬픔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죽어 가는 어머니의 한 서린 통곡이 담긴 이름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즉시 그 이름을 '베냐민'으로 고쳐 부릅니다. 이는 '오른손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오른손'은 하나님의 능력과 승리를 상징합니다.

  라헬의 시선: 자신의 죽음과 아이의 불쌍한 처지만 보는 '절망의 시선'

  야곱의 시선: 아들을 더 주시겠다던 하나님의 약속(30:24)이 성취됨을 보는 '언약의 시선'

  하나님은 우리의 의식을 바꾸어 주십니다. 이제 저주는 떠났습니다. 어떤 질병이나 고난이 와도 그것은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통로입니다.

  여러분의 입술에서 '슬픔(베노니)'을 지우고 '능력(베냐민)'을 선포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탄식을 찬송으로 바꾸어 끝을 아름답게 하십니다.

 

  2. 우리의 허물에도 불구하고 언약을 완수하여 끝을 맺어 주십니다.

  본문 22절에는 충격적인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야곱의 장자 르우벤이 아버지의 첩 빌하와 동침하는 패륜을 저지릅니다. 이는 영적 권위에 대한 도전이자 가문의 수치였습니다. 인간적인 계산으로는 여기서 야곱 가문은 끝장나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곧바로 이렇게 덧붙입니다. "야곱의 아들은 열둘이라." 이 짧은 구절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보여줍니다. 르우벤의 죄가 하나님의 '열두 지파' 계획을 막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르우벤의 허물보다 당신의 언약을 더 크게 보셨습니다.

  우리가 끝을 아름답게 맺지 못하는 이유는 대개 우리의 죄와 허물 때문입니다. "내가 이러고도 집사인가?"라는 자책과 마귀의 참소가 우리를 주저앉힙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의 도덕적 완벽함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신실함에 기초합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받을 모욕과 죄 값을 대신 치르셨기에, 하나님은 허물 많은 우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영광스러운 자리로 이끌어 가십니다.

 

  3. 영원한 본향을 바라보게 함으로써 끝을 완성하십니다.

  마지막으로 야곱은 드디어 아버지 이삭이 있는 헤브론에 도착합니다. 이삭은 180세를 일기로 기운이 다해 죽습니다. 주목할 점은 평생 갈등하던 에서와 야곱이 함께 아버지를 장사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분열되었던 가문을 화해시키시고 평안한 마무리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이삭의 죽음과 야곱이 세운 라헬의 묘비는 후손들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이곳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이다. 그리고 우리는 더 나은 본향인 하늘 성을 향해 가는 자들이다(11:16)."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끝을 단순히 '죽음'으로 종결 짓지 않으십니다.

  현재의 축복: 깨어진 관계의 회복과 평안한 삶

  미래의 소망: 주님 다시 오실 때 누릴 영원한 영광

  우리는 이미 승리를 보장 받은 사람들입니다. 바둑의 고수가 미리 수를 다 보고 두는 것처럼,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마지막 수까지 완벽하게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고난에 함몰되지 마십시오.

 

  결론: 하나님이 빚으시는 아름다운 마무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26년의 봄을 맞이하는 지금, 혹시 '베노니'와 같은 슬픔 속에 계십니까? 아니면 르우벤처럼 자신의 허물 때문에 발목이 잡혀 있습니까?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의 끝을 아름답게 하리라." 슬픔의 이름을 소망의 이름으로 바꾸시는 하나님, 우리의 죄에도 불구하고 언약을 성취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영원한 하늘 본향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그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여러분의 인생 마라톤 마지막 선에서 주님과 주변 사람들로부터 "참 잘 살았다"라는 인정을 받는 승리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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