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요한복음6:16-21 개역개정
-
16. 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17.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그들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18.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19.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 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20. 이르시되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신대
21.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024년 9월 22일 주일낮설교문
제목: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본문: 요 6:16-21
우리가 살아가면서 때때로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다. 그래서 사람은 인생을 고해라고 했다. 바다는 바람이 불지 않고 잔잔할 때는 평화로워 보이나, 태풍이 불면 물결이 엄청나게 사납게 일고 무서운 바다로 변한다. 이 세상은 평탄한 세상이 아니라 바다처럼 어떤 변수가 일어날지 알 수 없다.
본문은 주님께서 풍랑이 몰아치는 곳에 오셔서 어떻게 구출해 주시는지 보여준다.
예수님이 디베라 갈릴리 건너편 어느 산에 제자들과 함께 앉아 있는데 유월절 명절을 맞이하여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온 사람들에게 오병이어의 역사를 일으켜 많은 사람이 배불리 먹고도 12 광주리가 남게 하셨다. 군중들은 예수님이 일으키신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 예수님이 모세가 예언한 선지자라 믿었으나 예수님을 정치적인 메시야로 오해했다. 그래서 예수님을 억지로라도 임금 삼으려고 하자 예수님은 그곳을 떠나 산으로 가셨다.
제자들은 날이 저물자, 바다로 내려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려고 떠났다. 날은 이미 어두웠고 예수님은 아직 그들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다.
제자들이 풍랑이 이는 바다에서 노를 저어 십여 리쯤 갔다. 큰 풍랑이 일어 제자들이 노를 짓느라고 고생했지만, 가버나움까지 아직 반도 가지 못했다. 제자들은 바다 한 가운데서 큰 풍랑을 만나 큰 위기를 겪게 되었다.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어두운 밤에 풍랑으로 고생하며 노를 저으며 가버나움으로 가고 있는 제자들의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제자들은 두려워했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 예수께서 오심을 보면 기뻐해야 할 텐데 오히려 두려워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아직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이때 예수님은 바다 위에서 말씀하셨다.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만이 서 계실 수 있는 곳에서 서서, 오직 하나님만이 주장하실 수 있는 것을 선언하셨다. 예수님은 대개 하나님의 이름을 나타내는 신성한 신적 공식인 “내니” 보다는 더 간단하게 ‘나다’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폭풍우 치는 바다 위에 굳게 서서 ‘나다’라고 진술하셨다. ‘내니’라는 진술은 하나님의 인격적인 표현인 예수님의 신원을 밝히신 것이다(4:26, 6:35, 8:58).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만 서 계실 수 있는 곳에서 서서, 오직 하나님만이 주장하실 수 있는 것을 선언하셨다. “내니”는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신 말씀이다(출 3장). 바다 물결 위를 걸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욥 9:8)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다. 예수님은 물 위로 걸어오시는 표적을 통해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과 같은 신적인 존재임을 선언하신 것이다. 그리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명령하셨다.
가장 어려울 때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과 함께하실 것을 다짐하면서 주시는 특징적인 말씀이다.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자기 계시와 명령은 혼란과 두려움에 빠진 제자들에게 주시는 소망과 약속의 은혜로운 응답이다. 친숙하신 주님의 음성과 위로의 말씀은 제자들이 즉시 주님이신 것을 알 수 있게 하였다. 예수님은 언제나 그를 따르는 자들 곁에 계시며, 그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 기꺼이 도와주시며, 또 얼마든지 도울 수 있으시다.
이에 제자들은 기뻐서 배로 예수를 영접하니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다. 제자들은 주님을 알아보았을 때 예수님을 기쁨으로 배로 영접하였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을 때 두려움은 사라진다. 하나님은 두려워해야 할 분이시지만, 하나님을 받아들일 때 이보다 더 안전한 곳은 없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출 14:13).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시 46:11).
그들은 예수님을 배에 모시게 되자 기뻤고, 배는 그들이 가려던 땅(육지)에 도착했다(더 이상의 일이 일어나지 않고). 이것은 또 다른 기적이다.
제자들은 혼돈에 빠져 두려워할 때 예수님이 주님이신 것을 알고 안심이 되어 기뻐서 예수님을 영접했다. 우리가 할 일은 우리의 두려움을 잠잠하게 하시기 위해 “내니”라는 말 이상을 하실 필요가 없으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영접하는 것이다. 물 위로 걸으시는 분이 오셔서 온 세상 앞에서 서서 파도치는 바다에서 제자들에게 하셨던 것처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선포하시는 그분을 신뢰하고 영접하라.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 원래 가려던 목적지에 도착했다. 하나님은 바다의 물결을 잔잔하게 하시고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시는”(시 107:30) 분이시다.
예수님은 육지에서는 생명을 주는 양식의 제공자이시며, 호수에서는 당신의 백성을 보호하고 목적지로 이끌어주시는 구원자로 계시하셨다. 예수님은 어려운 난관에 처하여 있을 때 개입하셔서 그들을 안전에로 이끌어 주시는 분이시다. 그들이 가려던 땅에 무사히 닿을 수 있었던 것도 주님 때문이었다. 이것도 역시 작은 이적이다.
이러한 경험은 예수님을 기꺼이 모셔 들이려고 한 제자들에게 앞으로 어떤 고난의 폭풍우와 역경의 파도가 몰아쳐도 주님께서 늘 함께 하시며 그들이 목표로 하는 바를 이룰 수 있게 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주었을 것이다.
예수님은 생명을 부여하실뿐 만아니라(5천 명을 먹이심) 생명을 유지시켜 주시는 분이시다(풍랑을 다스리심). 오병이어의 표적이 암시적이라면, 예수님의 신적인 정체성을 물위로 걸어오시는 표적으로 명확하게 한 것이다.
우리는 풍랑 속에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을 영접할 때 기쁨으로 소원의 항구에 이를 수 있다.
댓글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