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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가 온 것은(눅 19:1-10)
운영자 2024-08-23 추천 0 댓글 0 조회 163
[성경본문] 누가복음19:1-10 개역개정

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3.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4.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7.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024818일 주일낮설교요약문

제목: 인자가 온 것은

본문: 19:1~10

 

  자신이 이 세상에서 할 일이 무엇인지 알고 그 일을 행하며 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 우리를 보내신 뜻을 알고 그것을 이루며 살 때 보람된 삶을 살 수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이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사셨다.

 

   예수께서는 뜻을 가지고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셨다. 여리고에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었다. 그는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였다. 당시 세관은 로마 정부로부터 세금 징수권을 얻어 일정한 액수의 세금을 징수하여 바친 후 로마의 막강한 공권력을 이용하여 자율적으로 세금을 부과하여 엄청난 부를 쌓았다. 그들은 매국노로 불리었으며 백성들로부터 엄청난 멸시와 조롱을 당했다. 세리장인 삭개오는 많은 부를 소유하고 있었고, 어느 정도의 신분과 권력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부정한 죄인으로 간주되어 유대인이면서도 완전히 소외된 사람이었다. 어디를 가도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고, 따돌림받는 신세였다.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했다. 삭개오는 예수님이 세리를 제자로 받아들이시고,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주셨다는 말을 주변에서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간절한 마음으로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보고자 했었다. 그러나 그는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예수님을 볼 수 없어서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갔다.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삭개오는 예수를 만나야겠다는 열망으로 그러한 결단을 한 것이다.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쳐다보시고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하셨다. 예수께서는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삭개오를 쳐다보셨고, 그의 이름을 부르셨으며, 그의 집에 머물 것을 말씀하셨다. 삭개오는 예수님이 어떤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였으나 예수님은 이미 삭개오를 알고 찾아오신 것이다.

  주님은 자신을 진심으로 찾는 자를 만나주신다.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29:13). 예수님은 삭개오에게 네 집에 유하여도 되겠느냐고 묻지 않으시고 유하여야 하겠다고 알렸다. 이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신적 사명의 일부를 보여주신 것이다. 삭개오는 주님의 부르심과 속히 내려오라 네 집에 유하겠다는 말씀을 듣고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예수님을 영접했다. 그동안 부당한 세금 징수 때문에 주민들로부터 멸시와 따돌림을 당하였고, 떳떳하지 못한 삶 때문에 고통과 좌절감을 맛보았던 삭개오는 잃어버렸던 기쁨을 다시 얻고 뛸 듯이 기뻐하며 예수님을 영접했다. 삭개오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듣는 순간 어둠의 절망이 빛의 소망으로 바뀌었다.

 

  뭇사람은 이를 보고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다라고 수군거렸다. 뭇사람은 예수님이 이미 버린 바 된 사람의 손님이 되고자 하는 것을 불평했다. 예수님이 자신들과 한편이 되어 삭개오를 냉대하시기를 기대하였는데 그들의 기대와 달리 예수님이 삭개오의 집에 유하려 들어가시므로 삭개오와 함께 배척 대상으로 삼았다.

  삭개오는 회개도 한마디도 없었고, 예수님을 믿겠다는 고백도 하지 않았지만, 예수님이 먼저 그를 받아주시고 부르신 것이다. 이에 삭개오는 응해서 자신도 예수님을 믿고 영접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1:12-13).

 

  삭개오가 서서 주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라고 여쭈었다. 예수께서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라고 이르셨다. 구원의 선물은 삭개오의 생각과 삶은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놀랍게 바뀌었기에 구원의 선물을 주신 것이 아니라 삭개오가 생각도 상상도 꿈도 꿀 수 없었던 구원을 주셨기 때문에 삭개오는 즉각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구원의 선물을 받고 보니 재물에 대한 그의 태도에 변화가 일어났다. 변화를 받아야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체험을 통해서 행동의 변화, 특히 재물에 대한 태도의 변화가 생겨난다. 구원은 모든 신자들의 변화의 원인이요 동인이다. 구원받을 자격을 구비한 사람만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수용적이고 개방적인 자세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영접하기를 거절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예수님의 구원관에 대해 도전했다. 구원을 선물로 받으려 하지 않고 자격으로 획득하려고 하므로 예수님께 원망하고 불평했다. 구원과 멀어졌다. 구원은 하나님이 예수님으로 주시는 것이다.

  삭개오는 서서 주여 보시옵소서라고 했다. 예수님을 라고 부르며 영접하고, 주님께 앞으로 이렇게 살겠다고 2가지를 고백했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나이다,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것은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삭개오는 예수와 개인적으로 만날 때 그는 완전히 변화되었다. 삭개오는 세리장으로서 남의 것을 토색하고 늑탈했다. 그에게는 재물이 가장 귀한 것이었다. 그것이 삶의 목적이었고, 그의 인생 전부였다. 그러던 그가 예수를 인격적으로 만나고 나니 즉각적으로 변화되었다. 가치관이 완전히 바뀌었다.

 

  예수님은 삭개오가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고 회개하여 변화된 것을 인정하셨다. 유대인들은 삭개오를 죄인으로 배척했지만, 예수님은 삭개오와 그 집이 영적인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선포했다(16:31).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예수님이 삭개오의 집에 유하러 오신 것은 그의 집에 구원을 선포하기 위해서였다. 예수님은 삭개오를 영적으로 구원받아야 할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에 그와 그 가정이 오늘 구원에 이르렀다고 선포하신 것이다. 무리의 판단은 삭개오는 하나님의 백성을 억압하는 자들에게 협력한 것과 사람들을 속여 빼앗은 것 때문에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주어진 약속(1:55)에서 배제되었을 것이라고 보았지만 예수님은 삭개오를 죄인이라고 멸시하는 사람들과 달리 삭개오를 구원받아야 할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본 것이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구원은 돈이나 공로나 자격으로 얻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구원을 선물로 받으려 하지 않고 자격으로 획득하려고 하므로 예수님께 원망하고 불평한다. 구원은 하나님이 은혜로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주시는 선물이다. 예수님은 죄인의 구주이시다. 우리도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여 변화된 사람을 인정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영접하자.

 

  예수님은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라고 하셨다. 삭개오는 단지 예수님을 보고자 했을 뿐이지만, 자신을 찾고 계시던 분을 발견했다.

  예수님이 삭개오와 함께 유해야 하는 이유는 잃어버린 자를 찾는 예수님의 신적 사명이 그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마침내 삭개오가 예수님을 볼 때 그는 예수님이 참으로 누구신지 알게 되었다. 예수님은 잃어버린 자를 구하는 분이시고, 존엄함을 회복시키시는 분이시며, 그의 구세주이시다. 예수님은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5:32)라고 하셨다. 예수님을 먼저 찾아온 것은 삭개오였지만, 이미 예수님께서는 죄 가운데서 살며 괴로워하고 있는 잃어버린 양과 같은 삭개오를 목자가 되시어 찾으신 것이다(15:3-7).

  잃어버린 것은 저주받고 파멸될 처지에 있다는 뜻이 아니라 단지 잘못된 위치에 있다는 것을 뜻한다. 삭개오는 본래 있던 위치에서 떠나 있다가 예수님에 의해 원위치에 복귀하게 된 것이다.

잃은 자를 찾는 사역은 죄인들을 찾아가는 것이고, 부르고 영접하는 것이다. 우리도 잃은 양을 찾아가고 부르고 영접하여 잃은 양을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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