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창세기21:1-7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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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2.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3. 아브라함이 그에게 태어난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4. 그 아들 이삭이 난 지 팔 일 만에 그가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할례를 행하였더라
5.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이 그에게 태어날 때에 백 세라
6.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7. 또 이르되 사라가 자식들을 젖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마는 아브라함의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하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022년 8월 21일 주일낮설교문
2020년 10월 20일(화) 새벽기도회
제목: 웃게 하시는 하나님
본문: 창 21:1~7
모세는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간다”고 했다(시 90:10).
인생을 사는 동안 웃음보다는 수고와 슬픔으로 눈물 흘릴 때가 더 많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행복해보이려고 또는 자신이 행복해지려고 웃으며 행복한 척 한다. 슬퍼하는 것보다 웃으면 건강과 정신에 도움이 된다고 웃음으로 치료해주는 웃음 치료사도 생겼다.
1980년대 코미디계를 평정한 이주일은 많은 관객들에게 큰 웃음과 감동을 주었다. 그러나 관객이 떠난 후 무대 뒤에서 쓸쓸함과 공허감이 찾아와 외로워했다고 한다.
웃음은 일정 조건이 만족될 때 15개의 안면 근육이 수축하면서 나타나는 움직임이다. 그러나 일정 조건을 다 갖추는 것이 인생에서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파스칼은 “모든 사람에게는 오직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하나님이 만드신 공간이 있다”고 했다.
본문은 하나님은 주의 백성을 어떻게 웃게 하시는지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은 주의 백성을 어떻게 웃게 하시나?
Ⅰ. 말씀대로 주의 백성에게 이루어주심으로 웃게 하신다.
하나님은 주의 백성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이루어주심으로 웃게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았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지키시는 주님이시다.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해주셨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12:2). “내가 사라에게 복을 주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사라에게 복을 주어 사라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사라에게서 나리라”(17:16).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17:19).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창 18:10)
여호와께서는 사라에게도 약속해주셨다.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창 18:14).
여호와께서는 사라에게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행하셨다. “돌보다”는 뜻은 '권고하다'. '방문하다'라는 뜻으로 하나님이 개입하시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가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일을 개입해주셔서 이루어주셨다.
아브라함은 늙었고 사라는 경수가 끊어진 상태였다(18:11~12). 하나님은 사라에게 행하셔서 잉태할 힘을 주셨다.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히 11:11).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지키시는 주님이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가 허물이 있고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시며 성실하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말씀은 견고하여 영원하다(사 40:8, 55:10~11).
이삭의 탄생은 자연 법칙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적적인 능력에 의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은 그대로 성취되며 이것을 믿는 것이 참된 신앙이다.
사라는 처음에는 믿지 못했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바꾸지는 못했다.
하나님은 능력의 주님이시며, 창조와 생명의 주관자이시다. 그리고 때가 되었을 때 정확하게 약속을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이삭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때에 태어났다.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때에 정확하게 성취되었다. 아브라함은 100세가 되어 아들을 사라에게 얻을 때까지 25년을 기다렸지만(12:1) 그 기다림은 약속의 성취를 위해 꼭 필요한 세월이었다(전 3:1~8).
이삭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탄생도 이미 오래 전에 예언되었다(마 1:21).
하나님은 미리 말씀해주시고(예고) 때가 찰 때 이루어주신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때가 찬 경륜을 이루시기 위해(엡 1:9). 정하신 때에 출생하셨다(갈 4:4).
이삭의 출생은 아브라함의 가정의 경사일뿐 아니라 구속사적인 면에서 언약의 첫 열매이며 확실한 증표였다. 왜냐하면 그를 통해 인류 구속의 대업을 이어가게 되었을뿐 아니라 인류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 1:21).
우리는 아브라함과 사라처럼 허물이 있어도 하나님은 신실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시고 우리의 죄와 허물을 그에게 담당시키시고 그로 말미암아 우리도 의롭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주셨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롬 5:3~4).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우리도 환경과 자신을 바라보고 절망하지 말고 환난 중에도 말씀대로 돌보시고 행하시는 주님께 소망을 두고 즐거워하며 믿음으로 연단 받자.
Ⅱ. 하나님은 주의 백성을 주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게 하심으로 웃게 하신다.
하나님은 주의 백성을 주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게 하심으로 웃게 하신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사라가 자기에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심으로 주의 말씀을 믿고 주의 말씀대로 이삭이라 이름을 짓고 이삭을 나은지 팔일 만에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할례를 행하였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창 17:19)하신 명령대로 이삭이라 이름을 지었다. 또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17:12) 명령하신 말씀에 순종해서 할례를 행했다. 할례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의 언약의 징표(창 17:11)이며 하나님께서 택하신 거룩한 백성임을 인치는 표다(17:9, 빌 3:5).
아브라함은 말씀에 순종하여 이삭이라 이름 짓고 할례 행했다.
주의 백성에게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는 기쁨과 헌신의 삶을 살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주의 말씀에 주의 백성이 순종하게 하시므로 언약 백성의 표를 가지고 살게 하신다.
우리도 주의 말씀을 믿고 순종해서 주의 백성의 표지를 가지고 기쁨으로 웃으며 살자.
Ⅲ. 하나님은 주의 백성에게 진정한 기쁨을 주심으로 주의 백성을 웃게 하신다.
하나님은 주의 백성에게 진정한 기쁨을 주셔서 웃게 하신다.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이 그에게 태어날 때에 백 세였다. 사라가 90세에 아들을 낳고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고 말했다.
하나님은 사라의 불신(의심)의 웃음을(18:12) 기쁨의 웃음으로 바꿔주셨다.
진정한 기쁨은 하나님이 웃게 하시는 것이다. 주님이 주시는 기쁨이야 말로 참된 기쁨이다.
사라의 웃음은 기쁨의 웃음이며 여호와께 대한 찬양과 존경으로 가득찬 웃음이다. 사라의 기쁨은 하나님께서 언약을 이루어주심으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하나님이 웃게 하셔서 기쁨으로 웃은 것이다.
아브라함의 웃음은 처음에는 약속의 말씀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웃어넘기려는 웃음이었다.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17:17).
사라의 웃음은 불가능한 것을 하게 하신다 하니 좋기는 하나 허탄한 듯해서 웃는 웃음이었다.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18:12).
아들을 낳겠다고 하신 여호와의 말씀은 당사자들조차 웃을 만큼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불가능을 가능한 것으로 바꾸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그 아이의 이름을 이삭이라고 하였다.
누가 나이 많도록 아이를 갖지 못한 사람에게 아이를 낳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나? 아무도 없다. 그렇게 하면 놀리는 것 밖에 안 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약속하시고 실제로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도록 행하셔서 사라가 임신하고 아이를 낳고 젖을 먹이고 그 사실을 사람들에게 말해도 믿을 수 없는 일인데 다른 사람도 사라의 이야기를 듣고 여호와께서 주신 말씀으로 말미암아 소망과 기대를 갖게 하시고 함께 슬퍼하던 여인들이 그 소식을 듣고 함께 기뻐하며 웃게 하셨다. “또 이르되 사라가 자식들을 젖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마는 아브라함의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하니라”.
신자들에게 약속의 성취는 기쁨과 헌신의 삶을 살게 한다.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창조와 생명의 하나님께서 절망과 자포자기적인 불신의 상태에 있는 사라로 하여금 기쁨의 찬양을 하게 하신 것이다. 그분을 의탁하고 순종하는 것이 형통과 축복의 길이다.
하나님은 그들 부부에게 오랫동안 맺혔던 한을 풀어주셨다. 슬펐던 세월은 가고 기쁨이 찾아들었다. 이 기쁨은 아이가 젖을 뗄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약속된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이삭의 출생과 유사하게 다른 어떠한 성취된 약속보다 뛰어난 것이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이 위대한 후손의 초자연적인 출생은 위로부터의 훨씬 위대한 방문이었다(눅 1:68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시며")
하나님은 권세 있는 말씀으로 죽음과 절망과 불임의 올가미를 깨뜨리셨다.
웃음은 설명할 수 없는 새로움을 받아들이는 성경적인 방식에 속한다. 그 새로움은 선물이다. 그것은 사람들에게서 비롯되지 않을뿐더러 사람들이 보증할 수 없는 것이다. 불임은 이제 우스운 현실이 된다. 충만한 기쁨(요 16:24)이 있는 까닭에 이제는 불임을 향하여 웃을 수 있게 하셨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벧전 3:15).
참된 만족은 주께로부터 온다.
하나님은 의심(불신)의 웃음을 기쁨의 웃음으로 찬송과 존경의 웃음으로 바꾸어주신다. 하나님은 약속을 이루어주심으로 주의 백성이 참된 기쁨을 갖게 하신다.
우리의 웃음이 또 다른 사람의 웃음이 된다. 언약을 함께 믿음으로 기대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소망 속에 살게 하신다.
예수님은 임마누엘이시다.
예수 탄생은 우리의 삶(역사)에 개입해주신 사건이다.
예수님은 주의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시고 영원히 구주가 되어주신다.
우리도 우리의 허물과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돌보시고 행하셔서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하시고, 슬픔과 불신의 웃음을 기쁨의 웃음으로 바꾸어주신 주님을 증거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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