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마가복음10:46-52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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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
47.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48.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49.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그 맹인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하매
50. 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51.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021년 10월 31일 주일낮설교요약문
제목: 불쌍히 여기시는 주님
본문: 막 10:46~52
잘 사는 사람, 잘 나가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처지를 잘 알지를 못한다. 그래서 함부로 말하기가 쉽다. 또 어려웠던 사람 중에서도 지금 형편이 나아지면 자기가 어려웠을 때 가졌던 그런 마음을 잊어버리기가 싶다.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개구리가 부화하여 알을 낳으면 알이 올챙이가 된다. 그런데 문제는 개구리가 올챙이를 잡이 먹는다. 올챙이는 자신의 어릴 때의 모습인데 개구리가 된 다음에 올챙이적 자신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파보거나 귀중한 것을 잃어보면 다른 사람이 아팠을 때 내가 너무 무심했구나 몰랐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된다. 어려움을 당해보면 좀 남의 사정을 알게 된다. 아픈 것만큼 성숙될 수 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주님과 함께 같이 길을 걸어가도 주님과 함께 하는 기쁨을 모르는 사람도 많은데 길거리에 앉아 거지로 살던 맹인은 사람들이 나사렛 예수라고 하는 말을 듣고 기회를 놓치지 않고 주를 불러 고침을 받고 기쁨과 감격 속에서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 되었다. 그에게 곤경은 저주가 아니었다.
본문은 절박한 곤경 속에 만난 주님이 자신을 어떻게 불쌍히 여기셨는지 말씀해주고 있다.
예수님은 우리를 어떻게 불쌍히 여기시나?
Ⅰ. 예수님은 우리의 소리를 들으시고 우리의 사정을 아시고 불쌍히 여기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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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주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사 부르짖는 소리를 외면하시지 않으신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들과 함께 여리고에 이르렀다가 여리고를 나가실 때에 한 맹인 거지가 길바닥에 앉아 있었다. 길거리에 앉아 있던 거지 맹인 바디매오는 자신의 곁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사렛 예수’라고 하는 말을 듣고 나사렛 예수님이 왕으로 오실 이스라엘의 왕 메시아이시며 그분은 나를 불쌍히 여겨주시는 분으로 믿었기에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소리 질렀다(사 35:6).
그런데 사람들은 바디매오의 절박한 곤경을 모르고 오히려 귀찮은 존재로 여기고 바디매오에게 ‘잠잠하라’ 꾸짖었다.
여리고를 나가시던 예수님은 맹인 바디매오가 간절히 자신을 찾고 불쌍히 여겨 달라고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가던 걸음을 멈추셨다.
누가 곤경에서 부르짖는 우리의 소리를 비난하지 않고 기울여 듣나?
예수님밖에 없다. 예수님은 우리의 절박한 처지를 아시고 동정하지 못하실 분이 아니시다(히 4:4).
우리도 사람들이 우리 소리를 듣지 않고, 알아주지 않는다고 낙심하지 말고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의 소리에 귀 기울이시는 주님께 기도하자.
Ⅱ. 예수님은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불쌍히 여기십니다.
예수님은 주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사 사정을 아시고, 필요를 아신다. 또한 주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셔서 필요를 채워주시려고 부르신다.
예수님은 자신을 간절히 찾으며 불쌍히 여겨 달라한 맹인 바디매오의 소리를 들으시고 그의 사정을 아시고 여리고를 나가시던 발걸음을 멈추었을 뿐만 아니라 “그를 부르라”고 명령하셨다. 사람들은 바디매오를 부르면서 “안심하라 일어나라 그분이 부르신다” 하니 바디매오는 뛰어 일어나 자신의 겉옷을 버리고 예수께 왔다.
예수님은 바디매오에게 “내가 네게 무엇을 해주기 원하느냐 ” 물으셨다. 바디매오는 “보기를 원합니다”고 아뢰었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주를 향한 소원을 품고 구하게 해서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이시다.
우리도 주와 주님 나라를 위해 필요한 것 구체적으로 아뢰자.
Ⅲ. 예수님은 우리의 소원대로 주님을 믿고 따르게 하심으로 불쌍히 여기신다.
예수님은 주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셔서 사정을 아시고 필요를 아실뿐만 아니라 소원대로 주님을 믿고 따르게 하신다.
예수님은 보기를 원하는 바디매오의 믿음을 인정하시고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 말씀하셨다. 바디매오가 곧 보게 되어 길에서 예수를 좇게 해주셨다.
바디매오는 예수님이 자신의 눈만 뜨게 해주신 것이 아니라 자신을 불쌍히 여겨 보게 하신 예수님을 보고 기쁨과 감격 속에서 길에서 예수를 좇는 사람이 되었다.
바디매오는 메시아가 오시면 이루어질 예언의 성취되는 주인공이 되었다(사 35:5) .
예수님만이 우리의 참된 만족이 되신다. 오직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해주신 주님을 따르는 복된 인생이 되게 해주신다.
예수님은 우리를 어떻게 불쌍히 여기니까나?
예수님은 곤경 속에 불쌍히 여겨달라고 주를 찾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셨다.
아무런 자격도 없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필요를 채워주시려고 부르셨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주의 백성 삼으시고 주를 좇아 거룩한 길을 가게 하셨다.
하나님은 아무런 자격도 없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독생자를 주심으로 영광스런 주의 백성이 되게 하셨다.
우리도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나의 필요를 아시고 우리의 주님이 되셔서 구속하신 주님을 찬양하며 거룩하신 주님을 따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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