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마태복음23:23-24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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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24. 맹인 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2025년 10월 19일 본오교회 주일낮설교요약문
제목: 십일조를 가르치신 예수님
본문: 마 23:23~24.
I. 신앙생활의 본질: 사랑과 풍성한 행복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의 신앙생활은 날이 갈수록 주님을 더욱 사모하고 그 사랑을 깊이 깨달아 행복과 풍성함을 누리는 삶이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삶을 억지로 겨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풍성한 삶을 누리게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러나 만약 처음 주님을 만났던 사랑과 감격이 현실의 어려움 속에서 식어 변질된다면, 그 영적 삶은 메마르고 건조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끝까지 주님을 향한 사랑의 마음이 익어가는 것이며, 그 사랑을 바탕으로 이웃을 돌보고 섬기는 행복한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II. 예수님의 엄중한 경고: 율법의 정신을 잃어버린 자들에게
오늘 본문에서 주님께서는 신앙의 본질이 변질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향해 "화 있을진저"라고 엄중히 선언하고 계십니다(마 23:23). 이 경고는 단순한 꾸짖음이 아니라, 그들의 신앙적 위선이 영원한 심판을 초래할 수 있기에 돌이키고 회개하라는 간절한 외침입니다.
십일조는 본래 아브라함이 승리의 감사로 자원하여 드린 것에서 시작되었고, 야곱의 서원을 통해 이어졌으며, 율법으로 제정된 것입니다. 이는 모든 소산물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며, 십분의 일은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고 신실하게 청지기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가르치신 것입니다.
III. 바리새인의 위선: 형식주의의 위험
당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십일조를 매우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그들은 토지 소산물은 물론, 율법에 명시되지 않은 박하, 회향, 근채와 같은 아주 작은 소산물까지도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외견상으로는 흠잡을 데 없는 신앙의 모범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왜 이들에게 "화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까?
동기의 변질 (율법의 형식): 그들은 십일조를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린 것이 아니라, 단지 지켜야 할 율법의 형식으로만 여겼습니다. 이 행위를 통해 스스로 '나는 진실한 사람이다'라고 자만하며,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맹인된 인도자: 주님은 이들을 "맹인된 인도자"라고 꾸짖으셨습니다(24절). 이들은 작은 하루살이 벌레는 걸러내려 하면서도, 정작 율법이 금한 낙타와 같은 크고 중대한 부정함을 삼키는 위선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겉으로는 경건을 꾸몄으나, 그 속에는 위선과 잘못된 욕심이 가득했습니다.
결국 그들의 문제는 행위(십일조)는 있었으나, 정신(율법의 더 중한 바)은 버린 데있었습니다.
IV. 율법의 더 중한 세 가지 정신: 정의, 긍휼, 믿음
예수님께서는 십일조를 드릴 때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될 율법의 핵심 정신, 즉 더 중한 세 가지를 가르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온전한 십일조의 정신입니다.
1. 정의 (正義, Justice)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시기에, 하나님 나라의 청지기 된 성도 역시 공의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십일조를 드리는 행위에 앞서, 돈을 벌 때 정직하고 윤리적이어야 합니다. 사기나 부정한 방법으로 번 돈은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정직하며, 하나님의 공의를 삶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2. 긍휼/인애 (矜恤/仁愛, Mercy)
하나님께서 죄인 된 우리에게 자비와 긍휼을 베푸신 것처럼, 십일조를 드리는 성도의 마음에는 주님의 자비하신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율법의 정신은 약자를 돌보고 억울함이 없도록 보호하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이웃을 향한 무관심과 냉정을 버리고, 어려운 사람들을 주님의 마음으로 돌보아 교회가 사랑과 자비로 가득 차게 하려는 목적이 있습니다.
3. 믿음/신실함 (信實, Faithfulness)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것처럼, 십일조 생활은 우리를 신실한 사람으로 훈련합니다. 이 세상은 물질을 따르지만, 우리는 물질에서 돌아서서 하나님과 그 말씀을 믿고 살겠다는 신실한 고백을 십일조를 통해 드리는 것입니다. 환경이나 유익에 따라 변덕을 부리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언약을 굳게 붙잡는 믿음의 정절을 지켜야 합니다.
V. 온전한 십일조 생활과 축복
주님은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마 23:23)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는 율법의 더 중한 정신(정의, 긍휼, 믿음)과 십일조의 행위를 모두 온전하게 행해야 함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십일조를 폐지하신 것이 아니라, 그 정신을 온전히 회복시키도록 가르치신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박하와 근채의 십일조 수준을 넘어, 우리의 시간, 재능, 인생 전체를 주님을 위해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말라기 말씀처럼, 온전한 십일조는 우리가 물질에 얽매이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청지기로서 풍성한 삶을 경험하게 하는 축복의 통로입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통해 우리는 물질에서 자유함을 얻고, 하나님의 부유하심과 넉넉하심을 세상에 증거하며, 복이 되는 복된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같은 형식적 위선이 아닌,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정신을 가지고 온전한 십일조 생활을 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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