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문

  • 설교/찬양 >
  • 주일설교문
죽은 자 가운데서 사신 이에게 속한 사람(롬 7:1-6)
운영자 2024-06-28 추천 0 댓글 0 조회 101
[성경본문] 로마서7:1-6 개역개정

1.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그 법이 사람이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2.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느니라

3.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녀라 그러나 만일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롭게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4.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5.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024623일 주일낮설교요약문

 

제목: 죽은 자 가운데서 사신 이에게 속한 사람

본문: 7:1-6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함께 죽고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산 자다. 이러한 사람은 더 이상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는 자이다.

  은혜 아래 있는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은 죄의 종에서 벗어나서 의의 종으로 산다.

  본문에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한 자는 어떻게 사는지 보여준다.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사신 이에게 속한 사람은 어떻게 사나?

 

  그리스도인은 죄와 율법에 대하여 죽은 자다.

 

  법은 사람이 살아있는 동안에만 구속력을 지닌다. 여인이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부가 되지만 남편 사후에는 결혼 관계의 법적 구속에서 해방되었으므로 다른 남자에게 가도 음부가 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율법에 의하여 죄인으로 정죄 받고 사망에 처한 자이다. 죄인은 스스로 자신을 죄에서 구원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주의 백성의 죄의 문제를 하나님의 아들 예수로 해결해주셨다. 예수께서 율법에서 명시하고 있는 구원의 객관적인 조건에 필요한 죄 값을 주의 백성들을 위해 치르셨기 때문에 성도들은 율법이 정하고 있는 형벌은 결코 적용되지 않는다. 예수는 죽으심으로 사망의 권세 잡은 자를 멸하셨다. 그래서 예수와 함께 죽은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게 되었다. 우리는 예수와 연합하여 죄가 만들어낸 궁극의 자리인 사망에 이미 들어갔다. 남편이 죽으면 아내가 더 이상 남편에게 책임이 없듯이, 우리 또한 죄에 대해서 책임이 없어지게 된 것이다. 우리와 죄의 관계는 그렇게 끝났다. 죄의 권세를 사라졌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와 함께 부활했다. 이것이 구원이다.

  죄란 하나님 없음, 곧 하나님의 부재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가 거부한 그 자리까지 쫓아 들어오심으로 부재를 다 걷어치우자 하나님 없는 곳에서, 하나님을 외면한 자들 앞에서 힘을 쓰던 권세가 사라지게 된 것이다. 죄는 더 이상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6:12-14). 예수를 믿었으니 이제 너 자신을 죄에 바치지 말고 하나님께 드리라는 말씀은 영광스러운 초대다. 헛고생할 것 없다. 네 인생을 살아라. 내가 너를 훌륭하게 인도할 것이다. 날마다 임마누엘이다. 우리가 경험하고 체험하고 확인했느냐, 그렇지 않았느냐와 상관없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느니라”(6:26).

 

  그리스도와 연합한 성도는 부활하신 예수로 사는 자다. 주의 은혜로 사는 자다.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한 자는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율법에 대하여 죽고 부활하신 예수님과 연합하여 예수로 살아 하나님을 위하여 많은 열매를 맺으며 산다.

  죄에 대한 형벌의 문제에 있어서 성도와 율법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렇지만 행위의 선악의 기준을 보여주는 기능에 있어서 율법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은 성도들에게 있어서도 여전히 필요하다. 성도가 구원의 성화 과정을 통과할 때에 율법은 극복해야 할 죄의 장애물들에 대해 일러줄 뿐만 아니라 율법은 성도가 스스로의 선한 행위나 공적으로는 결단코 율법이 제시하고 있는 것들을 모두 충족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하여서 더욱 하나님을 의뢰하여 신앙생활하게 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구속의 공로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율법이 정한 형벌을 면할 수 없었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에 대한 감사에 보답하는 마음 자세로 삶의 전 영역에서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는데 힘쓰게 한다(6:33).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라.”(24)라는 탄식은 비록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기는 했지만, 여전히 죄의 구습(원죄)에 젖어 있는 연약한 육신으로는 율법이 제시하는 요구 사항의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수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인의 갈등에 대한 절박한 탄식이다. 그러나 이 탄식에 이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25) 라는 찬양은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 말미암아 율법의 요구 조건이 모두 만족되었다는 환희의 노래임과 동시에 성도가 성화의 과정 중에서 이러한 율법의 선악의 기준을 제대로 만족시키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영원한 형벌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기 때문에 계속해서 성화의 과정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 사실에 대한 감사의 찬양이다.

 

  율법에 대한 우리의 관계변화가 칭의에서처럼 성화에서도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율법과 결혼을 하고 있는 동안에는 하나님께 대하여 열매를 결코 맺을 수 없었다. 하나님께 대하여 열매를 맺는 오직 유일한 길은 주 예수 그리스도와 결혼하는 것이다. 성도의 율법에 대하여 가진 관계의 변화와 목적과 목표는 하나님께 대하여 열매를 맺는 것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의 삶은 위대하고 멋지다. 그러므로 실패하거나 혹 넘어지더라도 그것으로 끝이 아님을 알고 일어나라.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었다. 우리가 육신 안에 있을 때 우리는 영 안에 있지 않고 율법 아래 있었다. 인간의 조건이 그러하기 때문에 어떤 다른 이도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 주님께서만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다. 그는 우리를 육체에서 구원하셨으며, ‘영 안으로인도하셨다. 또한 우리에게 성령을 주셨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연합되었으며 죄의 탐심보다도 더욱 강력한 그의 전능하신 능력에 매이게 된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점진적인 과정이 아니다. 우리는 전에 그러하였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이러하다. 그것은 완전한 변화요 완전히 새로운 것이다(고전 5:17).

  우리는 구원을 받았다. 우리를 의롭게 할 수 없는 율법의 무능함에서 벗어났다.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긴다. 완전히 자원하는 섬김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완전히 새로운 삶인데 그러한 것이 가능하게 된 것은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연합되고 그와 결혼한 결과로 인해 우리 속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령 때문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통하여 성령으로 말미암아 여러분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셨다면 그는 그것을 포기하지 않으실 것이며, 불완전한 상태로 두지 않을 것이다(5:27).

 

자유게시판 목록
구분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아버지의 마음(눅 15:11-32) 운영자 2024.07.05 0 109
다음글 더 이상 무엇을 바라나?(마 20:1-16) 운영자 2024.06.22 0 97

15570 경기 안산시 상록구 본오로 6 (본오동, 기독교대한감리회본오교회) . TEL : 031-409-7407 지도보기

Copyright © 본오교회. All Rights reserved. MADE BY ONMAM.COM

  • Today37
  • Total98,903
  • rss
  • 모바일웹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