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와 연합한 자(롬 6:1-14)
- 운영자 2025.4.26 조회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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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로마서6 : 1 - 14 | 개역개정
- 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 2.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 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 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 10.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 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 12.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 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 14.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2025년 4월 20일 부활주일 설교 요약문
제목: 예수와 연합한 자
본문: 롬 6:1-14, 찬송: 407장
예수 다시 사셨다. 이것은 누구든지 지식적으로는 알고 있다. 그러나 부활이 무엇이고, 부활과 나하고 무슨 관계가 무엇이며, 부활을 믿는 자의 삶은 어떠한 삶을 사는지를 잘 모른다. 본문은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의 삶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알려주어 예수와 연합한 자가 어떻게 사는지 알려주고 있다.
하나님은 예수의 부활로 예수와 연합한 자가 어떠한 삶을 살게 해주시나?
오늘 본문은 5장 20절 때문에 일어난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5:20.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여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느냐니.” 율법이 오기 전에도 아담 이후로 모든 사람은 죄 가운데 살았다. 그러나 그것이 죄인 줄 모르고 살았다. 그런데 율법이 오니까 죄를 죄로 알게 되었다.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 본문은 그렇다면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고 반문한다. 죄가 있을 때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넘친다면, 윤리적 행동의 기초를 찾기가 어렵지 않느냐? 모세의 율법이 그리스도인의 윤리 기초가 아니라면, 그리스도인은 그저 죄 가운데 거해야만 하는 것 아닌가? 여기에 대한 대답은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죄에 대하여 죽은 자]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2절).
신자는 죄에 대하여 죽었고, 따라서 더는 죄의 권세 가운데서 살 수 없다. 하나님은 그리스도가 위하여 죽으신 자들을 죄의 권세에서 해방하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계속 죄의 지배 아래 살아서는 안 된다. “그럴 수 없다.” 신자는 죄의 권세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권세 영역으로 이동한 자이다. 그리스도인은 죄에 대해 죽은 사람들의 집단에 속해 있으므로, 그들이 자신을 여전히 죄의 권세 아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다. 우리는 모든 의미에서 죽은 것이 아니라, 죄와 관련해서 죽었다. 그리스도가 그리스도인의 죄를 위해 죽으신 것은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음을 의미한다(고후 5:14~15). 그리스도인의 삶은 더 이상 그들 자신에게 있지 않고 그리스도께 있다. 그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 그리스도가 그들을 대신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죄 가운데 거하지 않은 근거: 예수와 함께 연합한 자]
모든 신자가 그리스도와 연합했다. 신자는 그리스도의 죽음 및 그리스도가 부활하셨을 때 그분의 죽으심과 그분이 받으신 새 생명 둘 다에 참여한 자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3절).
그리스도인은 회심할 때 그리스도의 권세의 영역으로 이동했고, 이것은 그들의 자기중심적 삶의 종말을 가져왔다. ‘세례를 받다”라고 번역된 ’뛰어들다‘라는 말은 신자가 그리스도와 새로운 관계를 맺고 그분을 예배한다는 의미이다. “뛰어들다’라는 용어는 신자가 회심할 때 그리스도의 권세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에 대한 은유적 언급이다. 그리스도와의 그러한 관계를 맺은 신자는 ”그의 죽으심“에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신자가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의미다.
[연합한 목적 :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4절).
신자가 그리스도의 죽음에 연합됨으로써 하나님은 그들에게 새롭고, 철저하게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능력을 부여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이 신자를 그리스도의 죽음에서 그분과 함께 연합하게 하신 목적이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연합함으로써 죄에 대해 죽는 것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동일한 신적 능력을 통해 질적으로 새로운 방식으로 사는 것이다. “아버지의 영광“이라는 문구에서 ”영광“이라는 용어는 하나님의 능력이 외적으로 표현되는 것을 언급한다. 이 경우에는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능력이다. “새“라는 용어는 사망과 죄의 통치 아래 있던 신자의 옛 생명과 그리스도와 연합한 새 생명을 질적으로 구분하는 것이다.
[연합한 목적의 의미: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5절).
신자의 존재 방식은 그리스도의 죽음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부활과 연결된다.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이란 말은 과거에 복음을 믿기로 한 결정이 계속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그들은 현재에 계속해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해 있다. 그러므로 과거의 결정과 그것의 현재 결과 및 앞으로 ”올“ 미래가 서로 연결된다. 언젠가 신자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할 것이다. 신자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연합할 것이므로, 그들은 심지어 지금도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 “모양“이라는 용어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및 신자의 회심과 새 생명 사이의 유사성이 오직 거기까지라는 점을 암시한다. 예수님의 역사적 죽음과 부활은 유일무이한, 시대를 변화하게 하는 사건이었다. 그렇다면 신자의 회심과 새 생명과 궁극적인 부활은, 예수님의 죽음 및 부활과 유사하기는 하지만 차원이 전혀 다른 사건들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에 연합한 의미: 신자를 종으로 삼는 죄의 권세를 무너뜨렸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6절).
신자가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예수님 속죄의 죽음에 참여한다는 것은, 그들이 날마다 죄 많은 세상에서 살지만, 그들의 존재 방식에 대한 죄의 지배력은 파괴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자는 과거에 속했던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막혔다. 신자와 ”옛사람“의 결속은, 그리스도가 그분의 피로 죄인을 의롭다고 하셨을 때(5:9) 그리고 아담의 불순종에 대해 은혜로운 순종의 행동으로 응답하셨을 때(5:19)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
사람의 몸은 그 사람의 육체적 ”지체“다. 그리고 ”죽을 수밖에 없는“ 현재의 존재 상태에서 신자는 그 지체를 ”불의“ 혹은 ”의“를 섬기는 일에 사용할 수 있다. “죄의 몸“은 죄에 영향받기 쉬운 몸, ”죄에 속했던 자아“다. 하나님은 신자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을 통해 이 자아를 ”무력하게 만들어서“(”죽어“) 죄에 대한 그들의 속박을 깨뜨려 버리셨다.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7절).
신자가 그리스도의 죽음에 연합하는 것에서 신자에 대한 죄의 권세가 파괴되었다. 어떤 사람이 육체적으로 죽었을 때 그 사람은 더는 죄의 권세에 종속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은유적으로 죽은 것이 신자의 존재 방식에 대한 죄의 권세를 파괴한다.
[그리스도의 새 생명에 연합한다는 의미: 다시 사망이 주장하지 못한다]
신자는 그리스도가 지금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누리는 생명을 고대하고, 그 생명에 일치하는 방식으로 산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8절).
그리스도가 죽으심으로 죄를 속하셨다는 사실을 신뢰하는 사람은, 언젠가 자신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 그리스도와 영원히 살리라는 것도 믿는다. 죽은 사람이 더 이상 죄의 유혹에 종속되지 않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사람은 자신을 죄에 대하여 죽은 자로 여겨야 한다(11절).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것이 장차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할 것을 확실하게 한다. 이 부활은 신자들이 현재에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리스도와 함께“라는 말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어떤 의미에서 그들 역시 십자가에서 죽었다. 그리스도가 그들을 ”위하여“ 죽으셨기 때문이다. 또한 신자는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와 산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9절).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살리신 것처럼 언젠가 그들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것이라고 믿는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다시 살아나셨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가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분이 육체를 가진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이다. 그분은 더 이상 죽음을 당하지 않는, 변화된 불멸의 몸으로 다시 살아나셨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부활 중 첫 번째다.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이 확신은 그리스도인에게 그들 역시 그리스도와 같은 몸으로 그분과 함께 영원히 살리라는 확신을 준다.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10절).
그리스도는 신자가 죄에 대하여 죽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죄에 대하여 죽지 않으셨다. 신자와 달리 그리스도는 “죄를 알지도 못하셨다”. 따라서 그런 의미에서 죄에 대하여 죽을 필요가 없으셨다. 그리스도가 죄에 대하여 죽으신 것은 죄를 위한 절정의 최종적 희생이었다. 이 희생은 신자와 하나님의 화목을 가능하게 하면서 신자의 죄를 속했다. 또한 죄와 사망이 더는 신자의 삶을 지배하지 않는 시 시대를 열었다. 대신에 그들은 자유롭게 의와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되었다.
[죄에 대하여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겨라]
신자는 하나님이 은혜롭게 그들의 죄를 속하셨다는 것을 신뢰할 뿐 아니라, 그들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되어 있고, 따라서 종속하게 하는 죄의 권세에서 자유롭게 되었다고 믿는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11절).
신자와 그리스도의 연합으로 그리스도의 속죄와 죽음 및 그분이 죄를 물리치신 것이 신자에게도 해당한다. 하지만 신자는 마음을 다해 이 진리에 계속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 진리와 일치하는 방식으로 살기 위해서다.
신자들은 그리스도처럼 육체적 죽음을 경험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리스도처럼 불멸의 몸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리고 그들은 여전히 자신을 둘러싼 죄 많은 세상의 영향 및 기만적인 유혹을 경험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이제 그분이 다스리시는 영역 안에 있다. 이 영역 안에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그들의 죄를 효과적으로 속했고, 그들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했다. 또 죄의 권세를 무너뜨렸다. 신자를 둘러싼 세상과 신자 안에 있는 세상의 본질 그리고 하나님께 반역하고자 하는 그 세상의 충동 때문에, 신자와 그리스도의 연합은 흐릿해진다. 이 때문에 그들은 자주 ‘생각하고 검토해서’ 그리스도께 해당하는 것이 그들에게도 해당한다는 것을 직접 보는 생활 방식을 선택해야 한다.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불의의 무기로 죄에 내주지 말고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그리스도와 신자의 연합이 죄의 종속시키는 권세를 깨부수고, 신자를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계시는 그리스도와 결합하게 했다면, 신자는 그들의 모든 재능과 능력을 하나님께 드려서 의를 섬기는 일에 사용해야 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12절).
신자는 그리스도가 이루신 속죄의 죽음 및 불멸의 생명과 연합했으므로, 그들은 몸의 나쁜 충동에 굴복하여 죄가 그들을 지배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아직 자기 백성의 구원을 위한 목표를 완전히 성취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신자는 죄와 사망에 종속된 육체를 가지고 있지만,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의 권세를 무너뜨리신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는 것이다. 신자는 이런 진리들을 이해하고 믿고, 그 진리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죄는 ‘죽을 몸 안에서’ 신자의 존재 영역 안에서 이 일을 하려 한다. 신자는 어떻게 죄가 그들 안에서 지배하는 것을 금할 수 있는가? 타락한 세상에 현재 존재함으로 생겨난 “사욕”에 순종하는 것이 죄의 지배가 낳은 결과라면, 사람은 그런 갈망에 순종하기를 거부함으로써 죄의 지배를 피할 수 있다.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13절).[법이 아니라 은혜 아래에 있는 자는 죄가 주장하지 못한다]
주님과 연합한 자는 죄가 우위를 점해서 그들의 삶을 지배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을 종으로 삼고 사망으로 이끄는 죄의 권세를 무너뜨리셨기 때문이다.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14절).
죄는 자기 권세 아래 있는 사람들을 조종해서 해를 입히려고 하는 오만한 주인이다. 죄가 그들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라. 신자는 율법의 권세 아래 사는 존재 방식에서 하나님의 은혜 권세 아래 사는 존재 방식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신자를 그분의 은혜 영역으로 옮기심으로써 그들에게 그 치명적 함정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하셨다. 이 때문에 신자는 죄가 자신을 지배하지 못할 것이라 확신하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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